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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1.24

신라 화랑도에 마복자라는 관습이 실제로 있었나요?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설명하길, 화랑들 사이에서 마복자라는 악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존재했었나요?

화랑세기 필사본을 신뢰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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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복자는 신라의 독특한 대부 풍습입니다. 이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기록되어있으며 하위계급에 해당하는 임신한 여성이 상위계급에의 남성과 관계 후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신을 배를 쓰다듬어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의 마복자라 불렀으며 이 풍습은 신라시대 왕족과 화랑 사이에서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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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복자는 화랑에게만 국한 되는 것 아닙니다. 마복자란 ‘배를 문질러 낳은 아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임신한 여성은 더 높은 신분의 남성을 아이의 또 다른 아버지로 선택하는 풍속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여성이 선택한 상대 남성이 여성을 받아들이면 ‘마례’(摩禮)라는 의식을 치르고 동침하는데 그로써 뱃속의 아이는 그 남성의 마복자가 되었다고 하지요. 마복자는 정식 자식과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21대 소지왕은 자식이 없었다. 반면 22대 지증왕은 원래 왕위 계승 서열이 낮은 왕족이었다. 하지만 임신 중인 지증왕의 부인이 소지왕과 동침하는 마례를 행하여 뱃속의 아이는 소지왕의 마복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23대 법흥왕이었다고 하지요. 자식이 없던 소지왕은 그런 식으로 7명의 마복자를 두었는데 법흥왕은 일곱 마복자들의 맏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소지왕은 첫 마복자인 법흥의 아버지에게 왕위를 넘겼는데 바로 64세의 지증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증왕의 아들이자 소지왕의 마복자인 법흥은 지증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라는 여성의 권력이 다른 국가들보다 비교적 강했던 나라 입니다. 이는 여왕이 있었던 것 으로도 셜명 되어 집니다. 신라인들에게 성이란 훌륭한 자식을 더 많이 얻으려는 본질적인 측면이 강했고,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결정은 존중됐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성이 원하면 뱃속의 아이에게 더 높은 신분의 아비를 만들어 줄 수 있었고 반대로 남성이 임신한 여성의 아이를 마복자로 원해도 여성은 거절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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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에 마복자라는 풍습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마복자라는것은 배를 문질러서 낳은 아이라는 뜻으로 신라에만 있던 문화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우두머리가 자신의 부하중에 임신한 아내가 있을때 그 부하의 아내를 자기 처소로 불러서 자기 집에 살게 하면서 정을 갖게 함으로 태어날 아기와 인연을 맺는 풍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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