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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6

예전에 배웠던 교련의 역사가 알고 싶어요.

예전 학교 다닐때.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페지되었다고 하던데. 교련의 역사와 유래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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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6.06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교련을 배울때가 있었습니다. 추억이네요.

    교련은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때 한국에서도 도입되었던 교과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21 사태 이후에 도입되었는데요. 일종의 식민지 잔재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련교육과 함께 학원 병영화의 시초는 1949년 자유당 정권이 학원통제와 학생 동원을 위해 만든 학도호국단이었습니다. 그 후 1960년에는 4.19 혁명으로 인해 교련과 학도호국단은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가의 정책적 과목으로 국민윤리 국사 교련이 대표적인 과목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국책과목으로 정신적 훈련과목으로 국민윤리(지금은 생활과 윤리와 윤리와 사상으로 바뀜)과목을 그리고 역사를 우리국가 중심으로 쓴 국사과목 그리고 북한의 붉은청년근위대에 맞서는 학생군사조직을 바탕으로한 교련과목을 채택하여 국가의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해 무장간첩을 침투시킨 1·21사태가 발생하자, 안보의식과 전시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높인다는 명분 하에 이듬해인 1969년에 교련이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86952.html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가안전과 개인 및 집단 안전에 필요한 지식을 이해하고, 각종 재난과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안전을 생활화하는 태도를 가지게 하는데 교과목표를 두었습니다.


    광복전 특히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이 학생들을 군국주의 침략의 방패로 삼기 위하여 실시하였고, 광복후에는 1948년 병역법에 의거하여 처음으로 실시하다가 1950년 6·25로 중단되었습니다. 1951년 12월 다시 학생군사훈련으로, 고등학교는 주 4시간 연 156시간씩, 초급대학은 주 4시간 연 140시간씩, 대학은 주 2시간 연 70시간씩 실시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과 국내정세 안정에 따라 1955학년도부터 중단되었으나, 1968년 청와대기습사건을 비롯하여 울진·삼척 등의 무장공비사건, 국립묘지폭파사건, 프애블로(Pueblo) 호납치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심상치 않은 동향에 자극되어, 1969년부터 다시 고등학교는 주 2시간 연68시간씩, 대학은 주 2시간 연 60시간씩 실시하다가 1990년 3월부터 대학에는 폐지하고 고등학교에만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내용은 대학의 경우 필수과목으로 교내군사교육과 병역 집체교육을 실시하고, 고등학교는 보통교과의 필수과목으로 군사교육과 위생 및 구급법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여학생의 경우 1970년부터 응급처치·붕대법·간호법 등을 주당 2시간씩 이수토록 하였습니다.


    대학교련교육 이수자에게는 이수한 학년수에 따라 일정기간의 군사복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93년 5월 18일 교육부는 고교군사훈련을 폐지하고 24년만에 교련을 안전교육 위주로 개편하였습니다. 고등학교의 교련교육내용은 1996학년도부터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도, 남녀 공통으로 국가안전과 개인 및 집단 안전을 중심으로 실시하게 되었습니다.1997년 고교에서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되었고, 2011년 부터는 교련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빚좋은 개살구80 님 , "교련"이라는 말은 '교육'과 '훈련'을 합친 단어로, 주로 군사적인 훈련이나 체육 교육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교련이라는 용어는 한국 교육 체제에서 특히 중요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련은 한국의 교육 체제에서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등장하였습니다. 하나는 1948년 대한민국의 국방법 제정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시행한 '군사교련'이고, 다른 하나는 1968년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차단하고 청소년들의 질서유지를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실시한 '학교교련'입니다.

    군사교련은 학교 체계 내에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군사 지식과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전쟁 상황 속에서 군사교련은 국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비하는 중요한 교육적 도구였습니다.

    반면, 학교교련은 청소년들에게 질서, 단결, 신체적 건강 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청소년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사회주의적 운동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교련은 학생들의 인권 침해와 군사독재의 상징으로 비판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89년 학교교련은 폐지되었고, 이후에는 체육교육이나 동아리 활동 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련의 역사는 한국 교육사와 그 시대의 사회 정치적 변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