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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2.11.25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서 폐위되지 않고

계속 집권했다면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할 명분이 없었을까요?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서 폐위된 원인이

부왕 선조와 사이가 틀어져서 그렇고

신하들하고 의견충돌이 있어서 폐위되었을까요?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고 계속 집권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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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이현행 전문가blue-check
    이현행 전문가22.11.25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그 이후 인조 때 두차례의 호란이 일어납니다.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침으로써 후금과 뒤이은 청의 반발을 샀고 침입의 명분도 제공한 측면을 봤을 때 호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있지만 호란이 일어났을 확률도 상존합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적극적으로 수습하며 왕위에 오릅니다. 적자 득 대비소생이 하니라 선조는 나중에 인목대비와의 소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났을 때 영창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임란 수습의 공과 북인들의 강력한 지지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광해군은 정통성에 문제가 있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하게 되지요. 인조반정 때 반정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는데 반정의 큰 명분 중 하나가 패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미를 폐하고 이복동생을 죽였으니까요.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중립외교라고 합니다. 임란이후 대륙의 정세는 변하고 있었는데, 명의 국력은 쇠하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은 성하는 시기였습니다. 후금과 명의 충돌에 명이 원군을 조선에 요청하였으며,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적당히 후금어게 투항하라는 밀지를 보내고 실제 투항합니다. 이 외교정책이 오늘날에는 국익을 위한 실용외교로 평가받지만, 당시 임진왜란의 위기를 구해준 명을 배신한 것으로 이 역시 반정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인조반정은 광해군대 북인의 권력독점에 대한 반발의 성격도 가지는데, 서인이 남인을 끌여들여 북인을 몰아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인은 더이상 재기에 성공못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서인의 우세 속 남인과의 공존의 붕당정치가 시작됩니다. 이들은 외교정책으로 친명배금을 고집하다 화를 당합니다.

    하지만 광해군 정권이 계속되었더라도 청의 호란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조선이 명과 친하고 가까운 상황에 청이 명을 치는데 있어 후방에 적을 두고 감행하기가 어렵기에 그러합니다. 저는 이 확률이 오히려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명분보다는 실리와 힘의 논리가 더 강하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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