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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2.26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의 어느 왕인가요?

예전에는 백제의 무왕=서동이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학계에서는 완전히 부정되었다고 하더군요.

일각에서는 서동요가 나제동맹을 비유한 것이 아니냐는 식 추측한다고 하는데,

서동요에 등장하는 서동과 선화공주는 실제 백제 역사에서 어느 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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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백제 무왕의 이야기입니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 들였고,이 부부는 열심히 불사 행하여 미륵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나중에는 인심을 얻어 국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서동은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인데,

    어려서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그를 아내로 삼기 위해 노래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널리 부르게 하였는데 이 노래가 바로 향가인 <서동요>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동요 [薯童謠] (네이버고전문학사전, 2004. 2. 25., 권영민)



  • 무왕(武王, ? - 641): 백제 제 30대 임금. 당에 의해 대방국 백제왕에 책봉되고, 신라에 잃었던 땅을 찾기도 했다. 사비궁을 중수하고 왕흥사를 창건하는 등의 업적을 남김.


  • 안녕하세요. 백제의 제 30대 무왕을 서동이라고 알고 있으며 선화공주 또한 실존인물에 대한 의구심은 개인적인 사견으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유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대 금석문 등을 보아도 선화공주가 신라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오게 하는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가상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면 대다수 추측성 글입니다. 그러한 글들을 보면 단순히 몇몇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 주장하는데... 역으로 해서 본다면야, 선화공주가 다른 곳의 사람이라는 기록도 보이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선화공주에 대한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는 선화공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작 화랑세기에서는 그러한 기록이 없는데.일부러 제하였을수도, 즉 호적을 파버렸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무왕 즉위 30년이 넘어서야 태자로 된다는 것은 그럴만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신라의 선화공주의 아들이라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지요.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서동요는 고려시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의 무왕조에 실린 향가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동이라 불리었던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를 사모하여 신라땅에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부르게 하였다는 노래이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서동요(徐東謠)는 백제 시대(18-19세기)의 문신인 이순신 장군의 소풍을 다룬 노래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시대의 인물로 백제와는 별개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따라서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의 어느 왕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동은 백제 제 30대왕인 무왕의 다른이름입니다.

    선화공주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공주이며 백제 제 30대 무왕의 비 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동요는 백제시대(18기 백제: 384년~492년)의 유명한 동요 중 하나로, 주인공은 백제의 26대 왕인 서해(西海)왕(재위 540년 ~ 576년)입니다. 서해왕은 백제 최고의 왕 중 하나로,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며, 그의 대표적인 문화 사업으로는 불교 경전인 절경(絶景)의 번역과 창제가 있습니다. 서동요는 이러한 서해왕의 장군인 서문방(西門方)이 남긴 풍자시(風刺詩)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쌍릉은 ‘고려사’ 등에 백제 무왕과 왕비의 무덤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쌍릉 중 대왕릉은 무왕, 소왕릉은 무왕과 함께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여겨집니다.무왕응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