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반 비율은 초기에 7%에서 후기에는 70%정도 입니다. 후기로 갈수록 양반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혼란을 틈타 공명첩의 발행과 관직매매 족보 위조로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됩니다. 조선 후기 대구의 호구조사의 내용을 보면 양반층이 증가한 통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보면 1690년 제1기 때에는 9.2%에서 1729년-1732년 제2기 때에는 18.7%로 1783년-1789년 제3기 때에는 37.5%로 증가하며 1858년 제4기 때에는 70.3%까지 양반층이 증가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 비율은 조선 초와 조선 후기에 따라 확연히 다릅니다. 전체 양반의 비율은 조선 초(1450년대) 약 1~2% 미만으로서, 지배계층의 지위를 공고히 가졌으나,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공명첩, 납속책 등의 무분별한 발행이 이어져 많은 양인들이 양반의 지위를 획득하였고, 400년만인 철종 때(1850년대)에 이르러는 국민의 70%가 양반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