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왕 대흠무가 죽은 후 원래 태자인 대굉림이 이어받아야 했으나 대굉림은 일찍 사망, 그 동생으로 확인되는 대정알은 당나라에 숙위로 가있었으며 대굉림의 아들인 대화여는 알수 없는 이유로 계승을 하지 않아 족제인 대원의가 왕위에 오릅니다.
아들과 손자들이 다수 존재했음에도 족제라는 불분명한 인물이 즉위, 일반적으로 12촌 이상의 친척부터 족-을 붙여 표현하는데 당시에도 족제를 같은 의미로 쓰였는지 알수 없으나 문왕 말기 왕위 계승 다툼이 있었으므로 이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합니다.
성질이 포악하고 시기심이 많아 신하들의 반발로 시해당했습니다.
대원의 시해의 뒷배경에 문왕의 막대아들이자 제 6대 왕인 대숭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문왕이 동경용원부로 천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고 폐왕 사후 다시 상경용천부로 천도한 점으로 폐왕은 발해의 수도 중 하나인 동경용원부를 세력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며 공식적인 국왕이 아닌 공위 시대를 이끈 임시 국왕일 수도 있습니다. 성왕 시기 나오는 왕자 대청윤을 사신으로 보낸 기록은 대원의가 보냈을 가능성이 높으며 대원의가 시해당한 후 왕위는 대굉림의 아들 대화여가 이어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