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군인이들이 일으킨 임오군란으로 고종은 흥선대원군에 사건의 수습을 맡깁니다. 흥선대원군은 집권과 동시에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폐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청군이 출병하였습니다. 일본도 공사관의 소실과 호리모토 교관의 피살 등을 이유로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을 압박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요구에 흥선대원군과 조선이 강하게 나서자 일본은 군사적으로 대응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청의 입자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정면 충돌시 청의 입장도 곤란했습니다.
결국 청과 일본은 흥선대원군을 제거를 이면 합의하여 청군은 흥선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몰아 텐진으로 납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