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으로 궁궐이 장악당하고 대원군이 섭정이 되었지만 이후 즉각 청군이 개입하고 대원군이 납치당했는데 이 당시 청군의 파병은 누가 요청했나요?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오군란은 구식군대가 신식군대(별기군)과의 차별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입니다. 이 반란으로 인해 밀려났던 흥선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잡는듯 하였으나, 민씨 외척들이 당시 영선사로 청나라에 체류 중이던 김윤식, 어윤중 등에게 급보를 보내 청에 원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이홍장의 직무대리 장수성이 오장경에게 덩저우의 회군 3천 명을 조선에 파병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 난병들이 궁궐을 향하자 명성황후는 궁궐을 탈출하여 여주를 거쳐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합니다. 이때 명성황후와 영선사를 이끌고 파견된 김윤식이 내통하여 청군을 요청하였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서 대해 의문이 있는 것을 사실입니다. 어떻게 도피중에 있는 명성황후와 김윤식과 내통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고종의 개입, 그리고 청군의 자체 판단(첩보) 견해도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민씨정권에서 청병을 요구한 것입니다. 민비가 청병을 요청하고 충주성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임오군란은 민씨정권의 개화정책과 별기군이라는 신식군인에 비해 구식군인에 대한 차별로 일어났습니다. 임오군란으로 구식군인들이 대원군을 지지하면서 대원군이 일시 집권하였지만 청군이 난을 진압하고 대원군을 압송해가면서 민씨정권이 재집권하게 되었으며 친청정책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