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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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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골품제도에 대해 궁금한게 있어요?

신라시대에 골품제는 주로 모계쪽으로 따라간다고 알고있는데요.그럼 성골 아버자와 진골어머니의 아들은 진골이 맞나요? 아님 이반대일때도 성골어머니와 진골 아버지의 아들은 성골이 되는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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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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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골품제도는 혈통에 따라 나눈 신분제도를 말하며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뉩니다

    결혼도 성골은 성골끼리 하며 당연 자식들도 성골이 되지요

    하지만 성골과 진골이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식은 순수혈통이 될 수없기에 진골이 됩니다

    따라서 왕은 성골만이 될 수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시대때 최초로 진골의 신분으로 왕이 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왕 무열왕 김춘추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골은 가장 높은 신분으로 왕족들 중 일부가 해당되며 왕은 성골 출신으로 순수 혈통을 위해 성골끼리 결혼했습니다.

    진골은 부모 중 한쪽은 왕족, 남은 한쪽이 귀족일때 진골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 골품제는 모계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골어머니와 성골아버지의 아들이 모계를 따르게 된다면 이 아들은 진골이 됩니다. 이반대의 경우도 성골어머니와 진골아버지의 아들이 성골을 따르게 된다면 이 아들은 성골이 됩니다. 단, 이는 일반적인 규칙이며, 특별한 경우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 골품제도는 고구려에서 발전된 토지소유제도로, 신라시대에 정착되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제까지 확인된 자료로는 골품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주로 농민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에 대한 이전 및 매매를 제한하는 제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토지를 보호하고 상속을 통한 토지의 산출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골품제도가 현행화되어 ‘정무공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골이라는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인지 진골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강조하려 나온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왕족 아버지와 왕족 어머니 사이의 소생이 성골, 한쪽은 왕족이지만 다른 쪽은 귀족 사이에 소생이 진골이라 했는데 이도 학계에서 부정되어 명확한 논증이 어렵습니다. 그녀나 대체로 성골 출신왕이다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태종 무열왕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모계와 부계 어느 쪽이 우위인가도 명확하지는 않은데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해 그런 해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아버지가 성골, 어머니가 진골이라면 둘 다 '귀족' 신분이므로 이 두 사람의 아들은 성골이며, 만약 아버지는 성골이지만 어머니가 귀족이 아닌 6두품 등이라면 이 경우는 성골이 아닌 진골로 분류하게 될 것입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