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갓 볶은 원두의 향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산화 때문입니다. 커피 향은 알데히드, 케톤, 에스터를 포함한 수백 종의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분자들은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거나 산소와 반응해 다른 물질로 변합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온도를 낮추는 것이 핵심인데요 산소는 방향족 화합물과 지질을 산화시켜 향을 둔탁하게 만들고, 불쾌한 산패 냄새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도가 높을수록 분자 운동이 활발해져 휘발 속도와 산화 반응 속도가 모두 증가하기 때문에 산소를 차단하면서 저온을 유지하는 것이 향을 보존하는데 핵심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정은 디개싱인데요, 로스팅 직후 원두 내부에는 많은 CO₂가 갇혀 있다가 며칠 동안 서서히 빠져나옵니다. 이 CO₂는 일종의 보호막처럼 산소 유입을 늦추는 역할도 하지만 그래서 너무 밀폐해도 좋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부 압력과 향의 균형 문제 때문입니다. 상업용 커피 봉투에 일방향 밸브가 달려 있는 이유도 이 CO₂는 배출하되 외부 산소는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말씀해주신 홀빈 상태와 분쇄 상태의 차이 역시 매우 큰데요 분쇄하는 순간 표면적이 수십 배 이상 증가하는데 이는 표면적이 커지면 산소와 접촉 면적이 증가하면서 산화가 가속화 되고, 휘발성 향 분자의 탈출 경로가 증가하면서 향 손실이 가속화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분쇄 커피는 수 시간~수일 내에 향이 눈에 띄게 감소하지만, 홀빈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감소합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반응 속도는 표면적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추출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