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여순항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위해 남하정책을 실시하자 영국은 이를 막기 위해
전세계 에서 러시아와 충돌하게 된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크림전쟁이나 러일전쟁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충돌,
러시아의 대마도 점령과 영국의 거문도 점령 등 여러 사례가 있고 조선에서도 러시아가 용암포를
무단점령한 뒤 조선정부에 조차요구를 하자 영국공사가 고종을 찾아가서 만약 조선정부가
이를 인정하면 영국이 선전포고하고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경고해서 무위로 돌리는 등
조선도 그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근데 의외로 청일전쟁 이후 삼국간섭으로 일본이 반환한 요동반도에 러시아가 여순을 조차하고
항구를 설치한 것에 대해서는 영국의 반발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려워서 영국이 안 막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동반도야말로 일본을 거치지 않고서도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고 청나라와 조선까지
영향권에 들어오는 곳인데 이곳을 러시아가 획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는 1895년 청일 전쟁 결과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에 대해 프랑스, 독일을 끌어들여 삼국간섭을 하였습니다. 결국 일본이 삼국간섭으로 요동 반도를 청에 돌려주게 되면서 러시아의 청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합니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만주에 철도를 놓을 수 있게 되었고 1898년 여대조지조약(旅大租地条约)을 맺어 청나라로 부터 뤼순과 다련을 25년간 조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화단 운동에 러시아도 연합군의 일원으로 20만명의 군대로 참전하고, 의화단 진압 이후 사실상 만주에 대해 실질적으로 군사 점령합니다. 1902년 뤼순에 만주를 관할하는 국동총독부를 설치하고 15만명의 러시아 군대를 주둔시킵니다. 이에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체결하고 견제하면서 뤼순과 다렌을 제외하고 철군하지만 러시아 일본의 갈등을 깊어져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