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당장의 전역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고대하던 24시간 확보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실망하지 않고 이미 영국원정군의 방향을 되돌려 오스트리아 전쟁을 단행한 상태였다. 이 단호한 결단과 민첩한 기동, 그리고 나폴레옹의 천재적 전략전술에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격파되었다. 대륙 동맹국들이 격파되니 영국이라고 별 수 없었다. 대불 동맹군이 나폴레옹의 손에 개박살이 나자 영국 수상 소(小) 윌리엄 피트는 실의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한 트라팔가르 해전 이후 나폴레옹이 직접 영국을 침공할 수 없게 됨으로써 대륙 봉쇄령 및 러시아 침공으로 이어졌으니 전략적 의미도 만만치 않게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트라팔가르 해전이 없어 프랑스 함대 전력이 무사히 보전되었다 하더라도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해군처럼 항구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장기간 항구 봉쇄도 포위하는 측의 배의 밧줄이나 선원 건강관리 등의 함대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들어서 포위하는 측도 장기간 항구 봉쇄시에 많이 고통스러웠기에 그냥 항구에 함대만 보존시켜 놓는 게 더 현명했으나 공격적인 나폴레옹 1세 황제가 그걸 무시하고 육군식 사고방식으로 무리하게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피해를 자초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