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사신 저고여가 귀국길에 피살을 당했는데요 지금은 누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인지 알려져 있나요?
몽고와 고려가 처음 접촉 시기에 몽골사신 저고여가 방문했다 돌아가는 길에 피살을 당했는데요 피살을 한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려 줘 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저고여피살사건이라고 하는데요. 1225년 당시 몽고와 고려가 처음 접촉하던 시기에 몽골사신 저고여가 방문했다 돌아가는 길에 피살을 당했던 사건입니다.
당시 저고여는 고려에 무례한 행동으로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225년 저고여가 정월 함신진을 통해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압록강가에서 피살된 사건이 발생한건데요. 이때 피살을 한 주모자가 누구인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고려와 몽고는 외교적 위기에 당면하게 됩니다. 추측으로는 고려워 몽고 사이를 이간질하기위한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동성(江東城)의 전역(戰役)이 끝난 뒤 몽고는 고려에 대해 큰 은혜라도 베푼 듯이 해마다 동진국(東眞國)을 경유해서 사절을 파견하여 과중한 공물을 요구해 왔다. 특히, 저고여는 1221년과 1224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에 파견되어 무례한 행동으로 공물을 요구하였다.
한편, 몽고에 굴복했던 동진의 만노(萬奴)는 이때 서역지방으로 원정을 나선 칭기즈 칸[成吉思汗]의 소식이 막연함을 호기로 삼아 몽고와의 국교를 단절하였다. 그리고 1224년 정월 고려에 사신을 보내와 이 사실을 통고하는 동시에 각기 각장(榷場 : 무역하는 장소)을 설치하여 무역을 하자고 요청해 왔다.
이에 고려는 몽고를 배반한 만노를 가까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입장에 처하여, 일단 몽고와 동진 두 나라와 통교를 계속하면서 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1224년 11월에 공물을 요구하러 온 저고여가 1225년 정월 함신진(咸新鎭 : 평안북도 의주)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압록강가에서 피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려는 지극히 중대한 외교적 위기에 부닥쳤다. 범행은 횡포한 몽고사신에 분노한 고려사람의 소행일 수도 있고, 고려와 몽고의 외교적 분쟁을 희망하는 금나라나 동진의 모략적 음모일 수도 있었다.
이들은 고려와 몽고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그들이 고려 영토를 침범할 때에도 몽고 사람의 복장을 하여 몽고의 소행인 것처럼 가장하였다. 또, 몽고 사신이 고려에 들어올 때에는 통로를 가로막으며 고려사람의 복장을 하고 종종 습격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에서는 저고여피살사건을 금나라 도둑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이 사실을 몽고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몽고는 고려와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후일 이 사건을 고려에 대한 침입의 구실로 삼았다.
이 사건은 몽고 침입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으나, 고려에 대한 몽고의 출병은 몽고가 아시아 제압의 일환으로 미리 계획해 둔 군사행동을 단행한 데 실천에 불과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대에도 미제사건이었던 사건으로 지금도 추측만 할 뿐,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용의국가로는 고려의 최우, 금나라의 우가하, 동하의 포선만노, 몽골제국의 자작극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저고여 피살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누가 저고여를 죽였는지, 사실상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고려가 원나라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에 악감정을 느낀 백성이 죽였다 등등 설만 존재하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