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전태일의 묘소를 서울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에 조성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도심 가까운 곳에 묘가 조성될 경우 시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86년 박영진이라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했고 모란공원으로 장지를 정했습니다. 그후 박종철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산업재해에 희생된 이들이 이곳으로 모였고, 모란공원은 자연스레 민주 열사의 묘역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