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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6

장보고는 완도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수있었죠?

안녕하세요? 장보고가 주로 활동했던 위치가 완도로 알고 있습니다. 완도여행을 가도 완도에 본고지가 있는데 어떻게 자리를 잡을수 있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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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보고는 완도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본명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로 《삼국사기》에서 출신을 알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가문은 5두품 이하로 한미했던 것으로 보이며 골품은 수도인 경주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므로 골품의 질서 안에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출신지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장보고의 친구 정연이 50리를 단번에 헤엄칠 수 있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다른 곳이 아닌 본인이 청해진을 설치한 완도 인근 출신일 가능성이 높은데 완도라는 지역 자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고향인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했다는 개연성이 크며 당나라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정연이 '죽어도 고향에서 죽는 게 낫다'고 하면서 청해진에 있던 장보고를 찾아왔다는 기록,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려 할 때 대신들이 장보고가 해도(海島)인(육지가 아닌 섬 사람)임을 지적했던 점을 미루어봤을 때도 그렇다. 이설도 있는데 장보고가 기병이었기 때문에 당시 서남해안 지역 섬에 목장을 운영하던 신라 귀족의 생활과 연관시켜 목동 출신으로 보인다고 전쟁사 교양 서적을 여럿 낸 서영교는 단정하듯이 썼는데 통일신라에서 지금의 전남, 경남에 이르는 남해안 여러 섬에 목장을 다수 운영한 것은 맞지만[15] 섬 출신이라는 이유로 목동 출신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만큼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가 장보고의 고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청해진이 있었던 지금의 완도군 장도는 장군도(將軍島) 또는 조음도라고도 불렸는데 장좌교 서북쪽 100m의 장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의 동백나무숲 언덕에 6기의 무덤이 있고 목없는 시신이 묻힌 1기가 장보고의 것이고 나머지는 장보고의 양친과 선대의 것이라는 전승이 있으며 장보고는 반농반어로 먹고 살던 그의 아버지를 따라 장도 바깥쪽 바다에서 고기잡이, 노젓기, 수영을 배우고 활과 창으로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민간 전설도 전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장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