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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6.12

한옥은 언제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지어졌을까요?

한옥은 우리나라 전통가옥인데요. 이런 한옥이 지금까지도 보존된 곳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한옥은 우리나라에 언제 최초로 지어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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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시의 한옥보존지구의 한옥은 조선시대와 근대초기에 지어진 전통한옥과 근대에 지어진 도시한옥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와 근대초기에 지어진 전통한옥 중에는 학술적,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도 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사당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으며,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는 범위에서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도의 변경만을 허용하고 있다.


    한편 도시한옥은 192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서울·대구·전주 등의 도시지역에 집장수들에 의하여 건설된 한옥이다. 도심의 대형필지가 중소 규모의 필지로 분할되고, 그 위에 근대적 성격을 갖는 한옥주거지가 조성되었다. 서울의 보문동이나 전주의 교동과 같이 도시주변에 개발된 근대 주거지에 건설회사나 집장사들에 의하여 대규모로 건설되기도 했다. 전통한옥의 연장선상에서 평면이 개량되고, 유리와 함석 등과 같은 새로운 재료가 사용되었다. 목재상에 의해 공급된 표준화된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분양 방식에 의하여 공급된 근대도시주택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이러한 도시한옥에 의하여 형성된 역사도시 경관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지방단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이 지역 단위의 한옥보존을 위하여 힘을 모으게 되었다. 대표적인 한옥보존지구로 서울의 북촌한옥마을과 전주한옥마을을 들 수 있다.


    서울의 북촌은 조선시대부터 대표적인 전통주거지였으며, 근대에 형성된 도시 한옥주거지와 더불어 1960년대까지도 한옥주거지로서의 역사경관이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강남개발과 함께 경기고등학교 등 명문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주거지로서의 위상이 격하되기 시작했으며, 휘문고등학교가 이전한 자리에는 15층 규모의 현대사옥이 들어서고 창덕여자고등학교가 이전한 자리에는 대규모의 헌법재판소가 들어서는 등 한옥경관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한옥보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76년에 북촌지역을 민속경관지역으로 지정하였다가, 1983년에 제4종 집단미관지구로 지정함으로써 본격적인 한옥보존정책이 시작되었다. 1985년 당시 북촌지역의 전체한옥 수는 1,518동으로 전체 건물의 55.1%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1년에는 1층으로 규제하던 주택의 건물 높이를 10미터로 완화하였고, 다시 1994년에는 16미터 5층 이하로 완화하였다. 그 결과 한옥이 빠른 속도로 멸실되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한옥의 숫자도 1990년에는 1,242동, 1999년에 1,056동으로 줄어들면서, 급기야 북촌 전체 건물 가운데 한옥이 46%에 불과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옥은 석기시대 막집, 움집같은 수혈식 구조에서 시작되었으며 역사 시대 까지도 마한은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이뤄졌다고 하며 다른 지역에서는 가야의 고상 가옥, 만주같은 북부에서는 구들이 사용된 원초적 한옥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옥의 기원은 기원전 6,000년경 신석기시대 전기의 움집이 가장 그 최초이며 직ㅁ의 한옥과 가장 비슷한 형태는 조선시대 후기에 전통 한옥이 완성된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한옥은 공간구성의 기본단위인 온돌, 마루, 부엌이 완전히 결합하여 각 마당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다양한 지역형으로 분화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