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그렸던 산수화는 현장에서 그린 건가요?
조선시대에 그렸던 산수화는 화가가 현장에 나가 직접 그린 건가요? 아니면 현장의 모습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화가의 기억에 따라 그린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현장에서 그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당시엔 사진도 없고 기억해서 그렸다기엔 너무 자세하고 세세하게 그렸기 때문이죠 ~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때 산수화를 그릴때는 현장에서 그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의 생각으로 그리는 상상속의 산수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린 산수화를 관념산수화라고 한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대에 유행하였던 절파 화풍을 위시한 전통적 화풍들이 눈에 띄게 쇠퇴하였다. 그 대신 남종화풍과 그것을 토대로 발전된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이 풍미하였다. 남종화는 이미 조선 중기에 수용되기 시작한 것인데, 그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다. 종래에 전래되었던 원대와 명대의 남종화 외에 청대의 남종화가 유입되어 이 시대 남종산수화의 폭을 넓혀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 산수화의 의의를 깊게 한 것은 진경산수화의 발달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주목되는 인물은 정선(鄭敾)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경치를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하여 그림으로써 한국풍의 산수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정선의 작품은 연기(年記)가 있는 것이 매우 희소하다. 그나마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은 모두 노년기의 것이어서 그의 진경산수화가 언제 확립되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금강산을 위시한 아름다운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렸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형성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조선 후기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강희언(姜熙彦), 김윤겸(金允謙), 김응환(金應煥), 김석신(金碩臣) 등 적지 않은 추종자를 배출하였다.
정선의 제자 심사정(沈師正)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진경산수화보다는 보다 전통적인 중국풍 남종화법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남종화풍은 조선 후기에 많은 문인화가와 화원들에 의해 구사되었다. 그 중에서도 강세황(姜世晃)과 이인상(李麟祥)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강세황은 허필(許佖), 신위(申緯), 김홍도(金弘道) 등의 화가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화원 중에도 산수화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다.. 김홍도와 이인문(李寅文)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홍도는 산수화 방면에서도 정선에 이어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후기 산수화의 또 다른 일면은 윤제홍(尹濟弘)과 정수영(鄭遂榮)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간결한 구도와 수채화적인 담채법(淡彩法),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매우 신선하고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남종화법에서 발전된 것이지만, 그 이색적인 화풍 특징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윤제홍의 화풍은 조선 말기로 전해져 김수철(金秀哲)과 김창수(金昌秀)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는 남종화가 유행하였고, 그 화법을 토대로 이 시대 특유의 진경산수화가 발전하였으며 이색적인 경향의 산수화가 태동되었던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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