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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메추리240
붉은메추리24024.01.01

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업적이 궁금합니다

요즘 거란과의 전쟁 대하드라마가 인기인데, 강감찬장군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분의 생애와 업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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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3대 영웅으로 꼽힙니다. 35세의 늦은 나이로 고려 제6대 왕인 성종(960∼997)때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전장제도나 제사, 과거, 손님접대 등을 담당했던 예부의 시랑(차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성종이 고려를 다스릴 때 고려 북쪽인 지금의 중국에서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큰 힘을 떨치고 있었고 고려는 거란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거란은 고려를 세 번 침략했는데 세 번째 침략이 일어났던 1018년 70세이던 강감찬 장군의 활약상이 두드러집니다.1018년 12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는데 거란이 고려에게 넘겨 준 강동 6주 지역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려는 강감찬 장군을 지휘관으로 삼고 20만 대군을 이끌도록 했으며 굵은 밧줄로 소가죽을 연결해서 흥화진(평안북도 의주군) 동쪽 냇물을 막고 1만2000명의 군대를 주변 산골짜기에 숨겨두었습니다. 거란군이 흥화진에 도착하자 막아둔 냇물을 한 번에 내려 보내고 군대를 이용해 총 공격을 지시했고 냇물에 휩쓸린 거란군은 크게 패했습니다. 이 전투가 흥화진 전투입니다. 그리고 1019년 2월에는 후퇴하는 거란군을 추격해 귀주(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크게 물리쳤습니다. 이때는 거란군을 좁은 계곡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으며 거센 바람이 거란군 쪽을 향해 불기 시작하자 강감찬 장군은 화살을 퍼붓도록 지시했고 거란의 10만 대군 중 남은 이는 2000여 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이 전투를 바로 ‘귀주대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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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 10세기 중반에 태어나 뛰어난 무력과 전술로 전쟁에서 크나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략적인 판단과 뛰어난 능력으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많은 장군들에게 존경을 받은 장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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