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부채감을 더는 방식일 뿐입니다.
이 질문조차 답을 정해둔 채, 재확인(여기선 긍정과 위로 등을)을 하거나, 사실상 '나는 이렇게 행동하고 있어요', '나는 이렇게 속깊은 사람입니다' 를 증명받고 싶어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자기변호에 가깝습니다. 일방적인 슬픔은 부채감의 해소라는 목적과, 감정의 배출이 아닌, 배설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마치 극도로 통제된 상황이기에, 우리가 익스트림 스포츠나 연극을 즐기듯, 이미 나는 관조자의 위치를 선점하고 바라보면, 자기객관화라는 지적유희를 즐기며 감정의 배설도 자유롭게 가능하죠.
우선적으로 질문글에 있어서, 프레임을 가져올 이유가 없습니다.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는 사례를, 여러 참사등에서 부자의 비극같은 사연이나 사건내용을 접했을때의 감정기복/과도한 감수성 등을 원인으로 지정하셨고, 이에 대한 원인으론 자신의 배경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추측도 확신도 아닌 신념에 가깝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문제를 직면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게 바로 인간입니다.
작성자님은 이게 우울증이냐고 묻기만 할뿐,
그래서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죠? 식의 해결의지가 빠져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답변하면, 질문자님은 이를 나의 문제를 질병이라는 또다른 문제로 덮으면서, 이를 직접적으로 직시하는 것을 피함과 동시에, 나의 문제라는 결과를 또다른 원인으로 치환(낮추는)하는 효과가 있죠.
우울증이 아니라면,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배려심이 높은 사람이다. 라는것으로 해석될 것이고요.
나조차도 나에 대한 만족과 이를 뒷받침해줄 신뢰가 없다면,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는, 인정욕구의 결핍을 충족시키기위해 살아가고, 그조차도 도달하지 못하면, 이는 증명의 데이터 조차, 허구의 영역으로 숨어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