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8.20

신라의 왕자 김태렴은 실존하는 인물인가요?

신라의 왕자였던 김태렴이 700명의 사절단과 함께 일본에 가서 일본왕에게 조공을 받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일본과 거의 단절된 상황이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일본에게 신라가 왜 조공을 바쳤다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한반도의 수많은 국가들이 있었지만 일본에 조공을 받쳤다는 이야기는 처음들어보는데 김태렴은 어떤 인물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8세기 신라의 인물로, 남북국시대에 일본으로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찾아갔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속일본기에는 경덕왕의 왕자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왕자는 아니더라도 실제 사절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래 글은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인 서영교 박사가 국제신문 1.8일자에 쓴 인데, 전체 내용 가운데 일부만 떼어다가,

    약간의 문장을 수정한 다음 게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글이 아닙니다.

    먼저 서영교 선생의 글을 소개한 후, 750년대 일본과 신라와의 교역, 김태렴에 대해서, 나의 글로 보충을 하겠습니다.

    속일본기에 나오는 인물인 탓에, 그간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소개를 해봅니다.


    - 인용문 -


    52년 윤3월, 일본 후쿠오카의 내륙 대제부(大宰付)에 신라사절단이 도착했다. 700인에 달하는 대규모였으며 대표는 신라의 왕자 김태렴이었다. 약 3개월 후(752년 6월) 신라사절단은 일본의 수도로 가서 천황을 알현했다. 김태렴과 일본 천황의 대화가 '속일본기'에 전해진다. 김태렴이 천황에게 코가 땅에 닿을 듯 큰 절을 하고 신라 국왕(경덕왕)이 전하는 말을 그대로 올린다고 말했다.


    "일본의 천황에게 삼가 아룁니다. 신라국은 예로부터 대대로 일본을 받들어 왔습니다. 이번에 제가(경덕왕) 몸소 가서 조공하고 인사를 드리려고 하였으나, 생각해 보니 하루라도 국왕이 없으면 국정이 해이해지고 문란해질까 염려되어, 저를 대신하여 아들(김태렴)을 보내어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일본 천황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들뜬 일본 천황이 답변했다.


    "신라국이 끊임없이 일본을 받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 신라 국왕이 왕자 김태렴을 보내어 조공을 바치니 그 정성에 짐(朕)은 기쁠 뿐이다. 앞으로 영원히 그대의 나라를 보살피리라."


    김태렴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하늘 아래 모든 땅은 일본 천황의 땅이요,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일본 천황의 신하입니다. 신 김태렴은 다행히 성세(聖世)를 만나 천황의 조정에 와서 이렇게 받들 수 있으니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몸소 가지고온 신라의 미미한 물건을 삼가 바칩니다."


    비록 한 다리 건너서 들은 말이지만 모든 중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중국 천황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은 일본 천황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김태렴은 일본 천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의 효겸천황은 왕위 계승 과정에서의 분란과 그 여파로 인한 갈등으로 지쳐 있었다. 천황의 권력도 불안정했다. 후지와라에 대영지를 가진 귀족 나카마로가 서서히 일본 군부의 실권자로서 부상하고 있었다. 힘이 없을수록 대외적인 체면이 더욱 중요해지는 법이다.


    사실 김태렴은 신라의 왕자가 아니었다. 그의 일행은 사절단으로 위장한 귀족 상인집단이었다. 당시 신라의 귀족들은 조선 선비들과는 달리 탐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익에 밝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준비해서 완벽하게 팔려고 일본에 건너왔다. 그들의 짐은 일부 진상하기 위한 물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장에 내다팔 정식 상품들이었다.


    오래 전부터 김태렴 상단은 중국을 통해 서역·남해 산 향약(香藥)을 대량으로 구입해 이문을 남기고 일본에 팔아 왔다. 일본에 있는 수천 개의 사찰이 그 향약을 소비했다. 불경에 부처를 공양하기 위해서는 25종의 향약이 필요하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교역을 낳고 거대한 경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장사꾼의 마인드가 없는 신라 국왕이 귀족들의 이러한 대외교역의 발목을 잡았다.


    나당전쟁이 종료된 676년부터 신라와 일본 사이에 막대한 교역의 문이 열렸다. 당시 신라는 당의 재침에 대한 우려로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전후에도 신라의 군비는 축소되지 않았고, 계속 증가되었다. 당과 대치 상태에 있던 신라에게 일본은 불안의 근원이었다. 당과 일본이 손을 잡고 신라를 동서에서 함께 공격한다면 신라는 망할 것이다. 신라 자신이 당과 손을 잡고 백제를 협격하여 멸망시킨 경험이 있지 않은가. 신라정부는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 최강의 당 제국 앞에서 약자인 신라의 선택의 여지는 좁았다. 신라는 일본에 막대한 물량공세를 취했다. 물론 일본을 우대한다는 것은 신라 왕들에게 속이 뒤틀리는 일이었다.


    종전 60년이 흐른 735년 국제정치의 순풍이 신라에 불어왔다. 당이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의 소유로 공식 인정해준 것이다. 안보를 위해 일본에 저자세를 취했던 왕들은 이제 머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었다. 당과의 불화를 공식적으로 청산한 그 해부터 신라 국왕들이 일본에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양국 간의 교역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고, 일본을 상대로 교역에 매달리던 신라의 귀족상인들이 힘들어졌다. 일본과의 교역의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신라 국왕이 일본의 천황에게 '자네'에 가까운 호칭을 사용해서 외교문서를 보내는 바람에 장사를 한두 번 그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신라의 상인단은 사절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본으로 들어갔고, 때문에 신라국왕의 외교문서가 필요했다.


    김태렴 일행은 일본 천황을 중국의 천자와 동급으로 존중해줬다. 그들은 돈이 들어가지 않는 립서비스는 언제든지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로 장사꾼다운 면모였다. 체면이 선 천황은 신라사절에게 관대한 조치를 내렸다. 김태렴과 그의 일행이 신라에서 가져온 배 7척 분량의 물품들을 모두 매각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거래내역은 '매신라물해'라는 고문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신라인들은 그렇게 고대하던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일본을 떠나기 전에 상당량의 포와 비단 등을 덤으로 받았고 술과 안주가 곁들여진 만찬회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일본 천황의 마지막 당부가 있었다.


    "오늘 이후로 신라국왕이 직접 일본 조정을 방문하도록 하라,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사람을 보내어 반드시 외교문서를 가지고 오도록 하라."


    천황은 김태렴이 신라왕의 국서 없이 말로만 모든 것을 처리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신라 왕은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조급해진 일본 천황은 이듬해인 753년 2월 신라에 사절을 파견했다.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김태렴의 말을 믿고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753년 8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오만무례하므로 왕이 접견하지 않고 추방했다."


    경덕왕은 일본 사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론 김태렴이 경덕왕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를 통해 천황이 알게 됐다. 일본 천황은 분개했지만,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세기 신라의 인물로 남북구시대에 일본으로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찾아갔다 전해지는 인물로, 한국과 일본 학계 측에서는 규모상 설령 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 사절로 간주합니다.


  • 안녕하세요. 안경국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쉽게도 "신라의 왕자 김태렴"은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로 여겨지며,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창작된 인물로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신라의 왕자 김태렴"이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상상 속의 요소로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왕자란 김태렴은 신라 조정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신라는 최근에 공식적으로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김태렴은 신라 왕자를 사칭한 것으로 신라의 사신과는 무관한 희대의 국제 사기꾼으로 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