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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봉창은 어떤 계기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인가요?

제가 오늘 이봉창 관련 영상을 보다 보니 과거 이봉창은 가세가 기울어졌을 때 조선 내 일본인 가게 또는 일본 본토에서 일본인과 일을 많이 하고 보수도 적지 않게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봉창이 혹시 어떤 계기로 일본과 대립하는 독립운동의 계기를 만든 것인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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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봉창 의사는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구 선생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를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젊은 시절의 이봉창은 일본을 좋아했으며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한국계 일본인처럼 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현지인 수준으로 유창하게 하고 일본식 이름도 얻어 일본인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용산역에서 근무하던 당시 3·1 운동이 일어났지만 당시 이봉창은 여기에 큰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이후 31세에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공근을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알게 되어 상하이에 있는 거류민단 사무실에 도착하여 임정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봉창은 경성부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상점 점원, 철도청 견습생으로 일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상점 점원과 막노동 등에 종사하였는데 1918년 철도국의 견습사원이 되었으나 1년 후 조선인보다 늦게 입사한 일본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분개하여 철도국을 그만두었고, 1928년에는 히로히토 천황 즉위식에 구경하러 갔다가, 한글과 한문으로 된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1일간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던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본 정부에 항거하게 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8년 용산 원효로에 있는 일본의 경영의 화전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1919년 해고, 1920년 용산역 만선철도의 기차운전견습소의 역부를 지냈고 이어 같은 해 전철수와 연결수가 되었으며 1921년 경 한,일간의 임금격차 문제에 눈을 뜨고 항일의식이 싹텄으며, 1924년 4월 위의 직책에서 해고됩니다.

      1924년 9월 자택에서 항일 단체인 금정청년회를 조직, 동 총무가 되며 다음해 형 이범태와 같이 조카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오사카에서 철공소직원으로 근무하다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동경과 대판 등지를 전전하며 가스회사에서 노동을 하는 등 막일로 생계를 꾸렸고 1926년 병고에서 1년간 일본인 표구사의 보조원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1928년 11월 교토에서 거행되었던 히로히토 일왕 즉위식을 구경하러 갔다가 유치장에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 당시 즉위식을 보러 온 사람들을 경찰이 검문했는데 이때 이봉창은 단지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편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수감, 그와 함께 감금된 일본인들은 대부분 다음날 풀려났으나 경찰들은 편지 내용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를 열흘이나 감금합니다.

      이 사건으로 이봉창은 신일본인이 되려 했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자신을 식민지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 그는 이때 처음 조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인 행세를 하며 도쿄에도 갔으나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은 마찬가지, 오사카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1930년 11월 어느날 그는 누군가로부터 상하이에 가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어 조선인들을 봐주고, 영국 전차회사에서 조선인들을 우대해 써준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일본에서의 생활이 지쳤던 그는 좋은 일자리와 차별 없이 떳떳하게 살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상하이로 갑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봉창은 일제강점기 일왕투탄의거 관련된 독립운동가입니다. 조선인 차별에 항일의식을 갖고 1924년 자택에서 항일단체인 금정청년회를 조직했습니다.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전전하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1930년 상해로 건너갔습니다. 김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 뒤 그의 소신을 수용하여 일왕폭살계획을 추진합니다. 1932년 동경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었습니다. 비공개 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