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 사후 궁내에서 누군가 소용 조씨를 저주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물론 이는 소용 조씨의 자작극이었으나 인조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것을 강빈을 제거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하여 강빈의 궁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강빈은 후궁별당에 감금합니다. 그러나 인조의 의도와 달리 세자빈(강씨)의 궁녀들은 이때 고문사까지 당하는 매우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데도 강씨가 저주를 했다는 거짓 자백을 하지 않았고 물증도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1646년(인조 24) 1월에는 인조가 먹는 수라의 전복에서 독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왕의 독살 미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모급 사건인데 이때 인조의 대처가 이상합니다. 의금부나 형조가 아닌 내시를 통해 조사시키고 수라상궁들을 조사하지 않고 세자빈의 궁녀들을 더 많이 잡아 고문까지 하며 조사한 것입니다. 당시 세자빈은 위의 저주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경덕궁에 유펴되어 있었고 강씨의 궁녀들도 줄줄이 끌려가 심문받거나 상전인 강씨와 같이 유폐중이었는데 왕의 수라에 독을 섞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게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결국 인조는 누명을 씌워 세자빈 강씨를 사형시키라고 합니다. 강씨는 억울하여 어찌하여 저를 이리 대하십니까라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는데 인조는 저주사건과 독살사건 그리고 불충을 저지른 죄 등으로 세자빈을 폐위시켜 궁에서 쫓아내고 사사합니다. 소현세자가 죽었으니 세손들이 왕이 되어야 했으나 후환이 두려웠던지 둘째아들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