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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1.16

조선시대에 장애인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많은 문화권에서 과거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죽이거나 쓸모없게 여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생각보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많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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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장애 분류를 3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위독한 병에 걸린 독질인, 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잔질인, 고칠수 없는 병에 걸린 폐질인 입니다.

    복지로는 장애인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 중 한 사람을 시정이라 칭하고 군역과 부역을 면제해주었으며, 장애인 살해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고을 수령을 파직하게 하고 읍호를 강등시켜 고을에 연대책임을 물었습니다.

    또, 장애인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자에게는 가중처벌을 내렸습니다.

    세종 3년 1421년 세종은 장애인과 병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라고 명하며 자립할수없는 자에게는 나라에서 생활비를 지원하고 독질이 있는 사람은 부역을 면제했습니다.

    또, 장애인을 정성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를 실시하여 장애인을 보살필수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관직에 등용하는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조선 후기 최한기, 정약용 등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장애인도 자립할수있도록 직업을 가질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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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머, 이솝, 세르반테스, 헬렌켈러, 베토벤. 신체적 장애를 딛고 문학·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호머와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인이었고, 이솝과 세르반테스는 지체장애인,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에는 역사에 남은 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반면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장애인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소홀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국문학자 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조선 등 전통 시대에 장애인들의 사회 진출이 오늘날보다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 조정에서 장애인 단체를 설립, 운영하는 등 체계적인 장애인 지원정책도 마련했죠. 정교수는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을 오는 22~23일 한림대에서 ‘한국인, 몸의 사회사’를 주제로 열리는 한국사회사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발표합니다.


    정교수의 논문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에 따르면 전통시대의 장애인은 ‘폐질자’ ‘잔질자’ ‘독질자’로 불렸습니다. 장애의 종류도 이른바 맹인, 애꾸눈, 외다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꼽추, 난쟁이, 언청이, 귀머거리, 벙어리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또 광질(狂疾·정신분열증), 간질 같은 정신질환도 장애로 받아들여졌죠.


    전통시대의 장애인 정책은 가족 부양이 원칙이었습니다. 만약 가족이 장애인을 부양할 수 없을 때에는 친척과 이웃 등 마을공동체에서 지원해 주었죠. 그렇다고 정부가 장애인에 대해 수수방관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태조 때에는 장애인들에게 조세와 부역, 잡역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형벌을 가하지 않고 베로 대신 받게 했으며 연좌제에서도 제외시켜 주기도 하였죠. 특히 고려나 조선의 정부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점복(점치는 일), 독경(불경을 외우는 일), 악사와 같은 직업을 알선해 사회활동에 참여토록 했습니다.


    조선 태종은 ‘명통시’(明通寺)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맹인들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명통시에서 맹인들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한번씩 모여 경문을 외우며 나라의 안위를 빌었으며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나라에서는 명통시에 노비를 지원했으며 소속 맹인들에게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려주기고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 중의 일부는 나라의 음악관장 기관인 장악원에 들어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맡았습니다. 점복에 종사한 맹인들 가운데에는 관상감 소속의 ‘명과학’(命課學)이라는 관직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전통시대의 장애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크게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았죠. 양반의 경우에는 과거를 통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정치가 허조는 구루병을 앓아 등이 굽었지만, 이조·예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오른 명재상이었습니다. 17세기를 살았던 조성기도 20살 때 말에서 떨어져 척추장애인이 되었지만 대학자가 되어 시문집 ‘졸수재집’과 소설 ‘창선감의록’을 남겼습니다.


    장애인 시인, 화가, 음악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조때의 시인 장혼은 절름발이였으나 조정의 인쇄소인 ‘감인소’의 관리가 되어 임금이 내린 책들을 교정했습니다. 그는 문집으로 ‘비단집’ 20권을 남겼죠. 또 조선 후기 시각장애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는 내외가 시를 잘 지었으며 집안을 다스리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 법도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화가로는 한쪽 시력을 잃은 최북이 대표적이며 음악가로는 이반·김복산·정범·김운란·백옥 등이 있습니다.


    정창권 교수는 “고려~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장애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았다”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조선 후기와 현대를 거치면서 오히려 후퇴한 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시대에는 오늘날과 달리 능력이 허락된다면 장애에 개의치 않고 직업을 갖고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는 게 정교수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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