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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7.04

조선말기 고종시대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건 왜일까요?

조선말기에 보면 조선의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였는데요. 오랜기간 써온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변경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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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는 동안 조선 내외부에서는 외세의 간섭을 막고 자주적으로 근대 국가를 세우자는 주장이 자주 벌어졌고 외부에서는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고종의 환궁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아관파천이 시작된지 1년 뒤인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정식 환궁했고 환궁 후 10월26일 정식으로 국호를 활제의 국가를 뜻하는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고치며 원구단을 축조, 그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여 독립된 자주국가임을 선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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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4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말 약 13년간 우리나라가 청나라의 제후국과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임을 내외에 선포했을 때 내세운 나라이름. 이제껏 쓰던 청나라의 연호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임금의 칭호도 대왕에서 황제로 격상하는 이른바 건원칭제(建元稱帝)를 단행했다. 황제권을 강화하고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이 이루어졌으나, 대내적으로는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충돌을 빚고, 친일파와 친로파가 투쟁을 벌이는 등 나라꼴이 심히 어지러운 가운데, 러·일전쟁이 일어나(1904)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을사보호조약(1905)이 강압적으로 체결되고,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보호조약의 폐기를 열국에 호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본의 강요로 퇴위했다.


    이어 순종이 즉위하여 융희(隆熙) 연호를 사용하고, 일본의 한국침략에 맞서 전국의 의병항쟁이 일어났으며, 1909년 10월에는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한국민의 이러한 항쟁에도 불구하고 열국의 묵인 내지 동조를 업은 일본의 집요한 야욕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조약이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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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오군란 이후의 청나라의 간섭과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위시한 외세로 말미암아 열강 세력의 이권 침탈을 비롯한 국가의 자주성이 크게 위협받자 자주성을 띤 국가 수립을 염원하는 백성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갔고, 독립협회의 고종 환궁요구와 조선의 자주독립 주장에 힘입어 대한제국이 성립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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