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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오징어74
검소한오징어7423.08.20

고대 잉카문명의 기원 및 쇠퇴 과정이 궁금합니다.

고대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었던 잉카문명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졌고 어떤과정을 통해서 발달하고 어떤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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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아메리카 페루 남부 쿠스코분지를 중심으로 15~16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잉카제국의 문화를 말한다. 마야문명과 더불어 인디언 문화의 쌍벽을 이룬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황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잉카제국은 북쪽으로는 에콰도르로부터 남쪽으로는 칠레 중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여 그때까지의 안데스문명을 집대성했다. 씨족 공유의 토지제도와 농경중심으로 신권정치가 행하여졌다. 관개ㆍ도로ㆍ운하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하였고, 우수한 사회복지적 제도 아래 통치되었던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였다.


    잉카족은 일명 케추아족이라고도 하며,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1240년경 쿠스코분지에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정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복자 에스파냐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잉카의 전설에 따르면 초대 '망코 카파크' 이후 13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제7대까지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제8대 황제 비라코차시대에 강적 창카족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 그의 아들 티투 쿠시가 제9대 황제 '파차크티'가 되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는 동시에 주변 여러 민족을 정복하여 제국을 이룩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 '파차크티' 자신이 정복한 곳은 티티카카호 연안 루파카족과 쿠스코 동쪽에 있던 쿤티스유 지방 등이었고 그 아들 '투파 잉카 유팡키'도 페루 북부에 쳐들어가 치무왕국을 멸망시켰으며, 파차크티가 죽은 뒤에는 에콰도르와 칠레, 아르헨티나의 북부까지 정복했다. 15세기 말 잉카가 죽자 '우아이나 카파크'가 잉카가 되어 에콰도르지방 개척에 주력했기 때문에 원래 수도인 쿠스코에 있던 잉카지배층과 에콰도르 키토에 있던 잉카 부장 사이에 대립이 시작되었다. 1525년 무렵 우아이나 카파크가 죽은 뒤 쿠스코에는 우아스카르가, 키토에는 아타우알파가 대두했으며 1531~32년에 내란이 일어났다. 아타우알파군이 쿠스코군을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내란은 끝났으나 그 직후 피사로가 인솔하는 스페인군이 침입하였다.


    1532년 11월 16일 고원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스페인군에게 '아타우알파'가 사로잡혀 사실상 잉카제국은 무너졌다. 스페인군은 이타후알파의 배다른 동생인 '망코2세'를 왕위에 올렸으나 망코 잉카와 그 아들들이쿠스코 북서쪽 산 속에 진을 치고 스페인군에게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1571년 마지막 잉카 '투팍 아마루'가 스페인군에 처형되자 40여 년에 걸친 잉카인들의 저항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