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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한하늘소43
소탈한하늘소4323.04.18

신라의 문무왕릉은 바다에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신라의 문무왕릉은 바다에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그러면 바다한가운데에 왕릉이 건설되었다는것인가요? 그냥 바다에 뿌려졌다는것인가요? 왕릉이 바다에 있다는게 이해가 안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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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과 대조해 감은사지나 이견대 등의 용도, 구조 및 위치로 보아 대왕암이 바로 승하한 문무왕을 장사지낸 문무왕릉임은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래에 있는 논란들은 문무왕의 화장한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가, 아니면 유골함과 부장품이 지금도 안에 들어있는 수중릉인가에 대한 논란이었고, 전자라고 해도 이미 신라 당대부터 윤회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실상 왕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입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해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 재위 21년 사망하여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사했다고 합니다.

    1964년 10월 24일 한국일보는 문화재청과 함께 신라오악학술조사 사업을 통해 이 왕릉을 조사했는데, 문무왕릉이 현재 대왕암 바위라는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대왕암까지 조각배를 타고 가서 대왕암 내부 웅덩이에 들어가 장대를 쑤셔 그 복판 바윗돌 밑에 구멍이 뚫린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바위 아래 공간이 발견되어 대왕암 내부 복판 바닥에 관이나 유골상자를 안치할 시설을 안치하기 위한 홈을 파고 그 위를 복개석이라 칭한 거대 바위덩어리를 덮었다고 합니다.


  • 문무왕릉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건너편 동해 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지만

    이 바위섬이 해중왕릉인 문무왕릉입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마친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 그 유언에 따라 장사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보통 왕릉하면, 배산임수의 천하명당을 찾아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무왕의 왕릉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 그것도 바위 안에 자리하고 있다. 경주시 동해안 봉길리 해안으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자리한 대왕암. 댕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불안정한 나라의 안전과 왜군의 침입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의법사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죽으면 자신의 시신을 불교예식에 따라 화장해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큰 용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해 동해의 대왕암에 뿌리고 장례는 검소하게 치렀다고 한다. 죽어서까지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던 문무왕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문무대왕릉은 신라 문무대왕의 해중 왕릉(海中王陵)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다고 하지요. 1967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묻힌 것이 아니라 바다 가운데 조그마한 바위 섬처럼 되어 있습니다.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자신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한 유언을 따라서 만들어 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