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59년의 1차 침공은 모거경이 4만여 명의 병력으로 침공했다가 70여 일만의 대부분의 영역을 잃은 채 압록강을 건너 패퇴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2차 침공은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가 이끄는 20만여 명을 이끌고 침공하여 개경을 함락시키는 등 위력을 발휘했으나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의 활약으로 3개월 만에 10만여명이 죽고 10만여 명은 다시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이 과정 중에 고려에서는 김용의 난이 일어나 공민왕이 암살당할 뻔한 위기도 겪기도 했으며 이성계 등은 신흥무인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당시 이성계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정세운과 안우와 이방실 김득배 수하의 장수로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후에 공신책봉을 받아 무군들의 힘이 기성세력인 권문세족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건의 난 또는 홍건적의 난은 원나라 말기에 한산동을 수장으로 뭉친 백련교도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의 농민 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총 3차례 몽골군에 쫓겨 고려를 침입하였는데 2차 침입 때에는 공민왕이 경북 안동까지 몽진을 가야했습니다. 이들 홍건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이성계 최영 등의 무장들이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