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이 죽으면 사관들이 실록을 편찬했잖아요. 그 실록의 자료가 되는 일종의 메모장인 사초는 왜 광해군 때를 제외하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나요?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초는 역사편찬에 자료가 되는 메모 형식의 기록물입니다.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이라도 사초를 볼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실록 기록물이 작성되고 나면 세초(물에 씻어서 글씨를 지우고 종이는 재생, 활용하거나, 소각, 파기하기도 함)를 하고 사초에 사용된 종이는 재활용해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