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의 강력한 군사력에 밀려 조선이 후금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금은 정묘호란 당시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하고, 억류되어 있던 인조를 구출하는 등 조선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은 후금의 군사력을 꺾을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후금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묘호란은 1627년 후금이 조선을 침공하여 일어난 전쟁으로, 전쟁 발발 50일 만에 조선과 후금이 형제관계를 맺고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정묘호란의 발발 배경은 인조반정 이후 조선이 친명배금 정책을 펼친 것이며, 이로 인해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였습니다.
✅️ 후금(후의 청나라)이 광해군 폐위를 명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 사건이 정묘호란인데, 이때 명나라와 적대하지 않는다면 후금과 형제의 약속을 하게 됨에 따라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 추후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소위 '군신관계'를 요구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