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의 남진정책 의의가 궁금합니다.
고구려의 왕 장수왕은 적극적으로 남진정책을 펼쳤는데요.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고, 백제를 공격해서 백제의 수도까지 함락시켰는데여. 이런 남진정책은 어떤 의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소수림왕 때부터 추진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소수림왕의 아버지 고국원왕이 371년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의 군대와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수림왕은 이 때부터 백제에 깊은 원한을 가지고, 즉위 초부터 백제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고구려는 3만의 군대를 보내 백제를 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삼국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토가 넓어지자 다시 안으로 체제를 정비할 필요를 느낀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해 백제와 신라를 압박합니다.
이에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하는데 고구려의 침략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백제로, 고구려는 3만의 군대를 보내 백제를 차지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삼국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때 고구려 영토는 아산만에서 소백 산맥을 넘어 영일만을 연결하는 지역에까지 미쳤는데 이러한 사실은 중원 고구려비를 통해 알수 있으며 5세기 말 고구려는 한반도의 중부 지방과 요동을 포함한 만주 땅을 차지하여 동북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북위에서 여러 나라의 외교 사절을 접대할 때 특별히 고구려 사신을 우대했는데, 이로써 당시 동북 아시아에서 차지하고있던 고구려의 위상이 높음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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