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토가 넓어지자 다시 안으로 체제를 정비할 필요를 느낀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해 백제와 신라를 압박합니다.
이에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하는데 고구려의 침략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백제로, 고구려는 3만의 군대를 보내 백제를 차지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삼국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때 고구려 영토는 아산만에서 소백 산맥을 넘어 영일만을 연결하는 지역에까지 미쳤는데 이러한 사실은 중원 고구려비를 통해 알수 있으며 5세기 말 고구려는 한반도의 중부 지방과 요동을 포함한 만주 땅을 차지하여 동북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북위에서 여러 나라의 외교 사절을 접대할 때 특별히 고구려 사신을 우대했는데, 이로써 당시 동북 아시아에서 차지하고있던 고구려의 위상이 높음을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