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는 반드시 여럿의 뜻을 모았으니 화백이라 하였으며 한 사람만 달라도 그만두었다.'
위의 글귀처럼 신라시대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의 귀족회의였는데, 이와 유사한 다른 나라의 만장일치제 귀족회의에는 어떤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에 모두 귀족 중심의 회의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제가 회의가 있었고 백제에는 정사암 회의 라고 하는 귀족 회의 기관이 있었지요. 다만 고구려와 백제의 회의 표결은 투표로 진행 했다고 하네여. 만장 일치는 아니고 다수의 득표수로 의사 결정을 했지요. 삼국 중 유일하게 만장 일치로 의사 결정을 한 국가는 신라가 유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