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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 학문 연구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 유교, 선보 등을 보관하고 수집했습니다.
조선 세조 때 양성지가 임금의 시문을 보관할 규장각을 두기를 청하나 실시하지 않았고 이후 숙종 때 작은 전각을 마련해 규장각이라 이름했으나 직제는 갖추지 않았습니다.
정조가 즉위 후 1776년 11월 5일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규장각을 세우고 제학, 직제학, 직각, 대교, 검서관 등의 관리를 두었으며 규장은 임금의 시문이나 글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이때 규장각은 그 이름대로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위한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했는데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문운을 불러일으킨 중심기관으로 많은 책을 편찬했으며 여기에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도 채용되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 제도를 정비해 자신을 지지하는 정예 문신들로 친위 세력을 형성시켜 우문지치와 작인지화를 규장각의 2대 명분으로 내세우고 문화정치를 표방했습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당시 왕권을 위협하던 척리, 환관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학문이 깊은 신하들을 모아 경사를 토론케 하여 정치의 득실과 백성의 질고 등을 살피게 하는 데 있었으며 문교를 진흥시키고 타락한 당시의 풍습을 순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