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회군이 일어난 배경은 먼가요
고려말 이성계는 왕의 명령으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원나라를 정벌하기위해 출정했었다 병력을 되돌려 정권을 잡았다 하는데요 어떤 정치적배경으로 일어난건가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작은 나라인 고려가 큰 나라인 명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는 명분으로 회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요동 지역을 공격하러 갔다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되돌려온 사건이라고 합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고, 농번기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무리이며, 명나라와 싸우는 사이에 일본군이 쳐들어올 위험이 있고, 장마철이라 무기를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전염병이 유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요동 정벌을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위와 같은 반대로 군사를 되돌렸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우왕과 최영 대장군은 요동정벌을 위해 이성계를 대장군으로 삼아 출병을 시키는데 이성계는 출병 후 위화도에서 4불가론(첫째 작은나라가 큰나라를 칠 수 없다. 둘째 여름에 출병하면 농사를 망친다. 셋째 여름 장마철에 무기의 아교가 녹아 쓸 수 없고 전염병도 창궐한다. 넷째 북침을 하면 남쪽에선 왜구들의 침입이 잦아진다.)을 들어 회군을 결정하게 되고 군과 백성의 인심을 얻어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이른바 역성 혁명[易姓革命 : 임금의 성(姓)이 바뀐 혁명이라는 뜻. 하늘의 명(천명)을 받은 사람이 새 왕조를 세우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력을 동원하여 많은 피를 흘리는 쿠데타와는 달리 이른바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점이 특징이다.]으로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많은 피를 흘리는 커다란 정치적 변란 없이 새 왕조가 세워진 것이죠. 신진 사대부는 위화도 회군이라는 군사적 행동과 과전법 실시라는 경제적 개혁을 단행하며 새 시대를 열어갈 실권을 잡게 됩니다. 원을 밀어낸 명나라는 원의 직속령이었던 철령 이북의 땅을 지배하겠다고 고려에 일방적으로 알려 왔습니다. 이 일을 놓고 고려 조정은 두 입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최영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요동을 정벌하자고 주장했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최영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요동 정벌을 위한 출병이 이루어졌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난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섬 위화도에서 큰 비를 만나게 됩니다. 때는 5월, 지금으로 하면 6월 장마철이었죠. 이성계는 더 이상 진격할 수 없다고 보고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둘째, 여름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셋째, 대규모의 군사가 요동으로 향하면 남쪽에서 왜구가 공격할 것이다. 넷째, 지금은 무덥고 비도 오는 시기이므로 무기가 망가지고 군사가 질병에 걸리기 쉽다.’라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 정벌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장수들도 이에 동의하자 자신을 얻은 이성계 등은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버렸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반대파인 최영 등을 제거합니다. 이 일로 이성계 세력은 정치적 ·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위화도에서 돌린 말머리는 결국 왕조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출처 :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