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백성 270여 명이 살상되고 민가 796가구가 소실되었으며, 왜인은 295명이 죽고 왜선 5척이 격침되었고 조정에서는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진휼하는 한편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추방하였으며, 이 난에서 죽은 왜인들의 무덤을 따로 만들어 후에 들어오는 왜인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과 일본의 통교가 중단되었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일본은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과의 외교 재개를 요청하였으며 1512년(중종 7) 5월과 윤5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국왕의 명을 받고 대마도주가 삼포왜란 때 난을 일으킨 주모자를 처형하여 바치고, 포로로 끌고 갔던 조선인을 송환하면서 화친을 청함에 따라 새로 임신약조를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재개하였습니다. 이때의 임신약조로 내이포만을 개항하였고, 조선과 거래하는 선박 수와 인원 등을 조선 초기보다 더 강화하여 그 수를 제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