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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7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이 현재까지 우리 영토인 독도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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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7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0년 대한제국이 독도를 울릉도 관할로 명시한 칙령 제 41호는 제 2조에서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라고 규정해 울도군의 관할 구역에 독도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고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고 규정합니다.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제 677호에 독도를 일본의 통치, 행정범위로부터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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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인 증거..

    독도가 우리땅이냐 아니면 일본땅이냐 하는것은 역사적 자료 즉, 증거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독도가 우리땅인 증거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이기 시작한 것은 기록상 512년 (신라 지증왕 13)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부터 시작된다.

    신라에 정복된 후 신라의 문화가 우산국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울릉도에서 발굴, 출토되고 있는 유적ㆍ유물들은 우산국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문화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복이후 한반도 본토 문화의 활발한 유입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등은 본토의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유입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울릉도ㆍ독도 등 해양도서민들과 본토민들의 활발한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울릉도ㆍ독도지역은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의 영토로 존재하였다.

    고려가 새로운 통일왕조로 등장한 후 고려 중앙정부로부터 우산국 혹은 우릉성으로 불리면서, 고려의 동해안 외곽 방어선 역할을 수행하며 본토와 지속적인 문물교류를 통해 번성해 갔다.

    11세기 초 동북 여진족이 침입하자 고려는 즉시 우산국에 농기구를 보냈으며, 다음 해(현종 10년, 1019)에는 여진족 침입 당시 본토로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산국의 피폐상황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던 듯 하며, 이에 현종 13년(1022)에는 본토에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예주에 정착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고려사에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덕종 원년(1032) “우릉성주가 아들 부어잉다랑을 보내어 토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우산국의 피폐가 어느 정도 복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진족의 대규모 침입 후 본토로의 이주는 계속되었던 듯 하며, 이후 우산국의 번성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여진족의 침입이후 약 100여년이 지난 인종 19년(1141)에는 명주도 감창사 이양실이, 의종 11년(1157)에는 명주도 감창사 김유립이 울릉도에 주민 이주와 관부설치가 가능한 지를 조사하였다. 그 후 1170년(의종 24)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이후 계속된 국내외 정세의 불안과 1231년(고종 18)부터 시작된 몽고의 침공으로 인해 옛 우산국 혹은 우릉성지역에 대한 재개발은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종 30년(1243), 울릉도에 동해안 주민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울릉도로 이주한 사람은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몽고와의 강화 이후 원의 대목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려정부는 울릉도에서 벌목을 행하였다. 이 벌목은 고려의 요청으로 곧 중단되었지만 대규모로 이루어진 벌목으로 새로이 동원된 본토민들과 이미 이주해 있던 현지민들의 고초가 심했을 것이며, 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본토로 도망했으리라 생각된다.


    원 간섭기 동안에도 울릉도ㆍ독도지역에 대한 고려의 지배는 계속되었다. 고려사에는 충목왕 2년(1326) "동계의 우릉도인이 래조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동계란 오늘날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원으로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이었으며, 우릉도는 울릉도의 다른 명칭이었다. 독도가 그대로 울릉도의 속도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이 지역은 고려의 통치지역 중 하나였으며, 지속적인 본토와의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최근 우리나라측에서 개설된 독도 공식 홈페이지

    '사이버 독도 (www.dokdo.or.kr)' 에서 참고하여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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