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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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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무라 신이치는 왜 대대적인 유물 발굴 사기를 친건가요?

후지무라 신이치는 고고학에서 아주 대표적인 사기꾼에다가 일본의 오점이라고 들었는데요.

당시 이 사람은 어떠한 배경으로 대대적인 유물 발굴 사기를 친것이며 이후 이 사람에 대해서 후속대응을 한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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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지무라 신이치 사건은 소년탐정 김전일 애니메이션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는데 사기를 친 이유는 단지 개인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일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일본 고고학계에 큰 오점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연구하다 1976년 미야기현 오사키시의 사사라기 유적지에서 기와 유물을 발견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약 80만 년 전 일본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했다는 발표를 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순수히 세간의 주목을 끌기위해 본인이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2년 부터 독학으로 고고학을 연구, 1976년 미야기현 오사키시에 위치한 사사라기 유적지에서 기와 유물을 발견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후에 수사로 밝혀진 결과 이때부터 유물 조작을 시작했다고 하며 이후 본인이 직접 답사단을 꾸리기 시작한 1975년 이미 석기 분야의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1년 사사라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기와 유물이 4만년전에 제작된 것임을 밝혔고 당시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의 연대기는 가장 오래된 것이 3만년 전의 것이었으므로 일본의 구석시 연대를 1만년이나 끌어올린 후지무라의 유물 발굴에 일본 열도 전체가 흥분했고, 이후 계속 오래된 유물들을 속속들이 발굴해 내어 일본의 구석기 시대의 연대를 계속 앞당겼는데 90년대 말엽 70만년 전 구석기를 발굴하여 일본의 역사 연구에서 자신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고 교과서에 그의 발굴 결과와 업적이 실리게 됩니다. 그 일로 그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어 아예 신의 손, 갓 핸드라는 별명이 붙었고, 토호쿠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으며 몰락하기 한달 전인 2000년 10월 아사히 신문에 자신이 80만년 전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의 발견은 10만년이나 더 끌어올리는데 성공하는 등 영광의 절정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후지무라의 유물 발굴은 모두 속임수로, 그는 미리 준비한 가짜 유물을 유적지로서 그럴법한 곳에 묻어두고 가짜 유물을 묻은 곳을 찾아가 발굴하는 식으로 조작했습니다.

      2000년, 어떤 사람이 그의 조작을 눈치채고 이를 마이니치 신문에 제보하면서, 조사가 시작됩니다.

      조작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일반 동영상 카메라로 녹화했고 먼 거리에서 숨어 촬영했는데, 2009년 9월 5일 미야기 현 가미타카모리 유적지에서 선명하지는 않으나 자신이 만든 유물을 몰래 묻는 현장을 촬영하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 결국 10월 22일 아침 정확한 현장을 촬영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부인할 것을 우려해 11월 4일 센다이 시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지면서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기로 하고, 영문도 모르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그는 약 40분간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이를 듣고만 있던 취재팀이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이 있다며 그가 몰래 유물을 파붙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전부 조작한 것은 아니며, 마가 낀 것같다며 조작을 인정, 이 사건으로 후지무라가 발굴한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가 벌어져 가짜로 판명된 유물들은 국가 사적 지정이 취소,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도 삭제, 고고학계에서 추방됩니다.

      그의 책을 출판한 고단샤에서도 도서 환수 조치, 와시오 켄야 당시 편집이사의 자진 사퇴로 책임을 지는 등 그의 유물 발굴 조작 사건은 일본 출판계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는 아아츄어 고고 학자 였습니다. 그의 발굴 능력을 의심한 한 신문사가 2000년, 후지무라 신이치의 발견을 의심해서 그의 발굴 현장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놀랍게도 카메라에는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발굴 현장에 들어온 후지무라 신이치가 유물을 땅에 파묻는 모습이 잡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유물 발굴 비결이었습니다. 직접 만든 유물을 묻어뒀다 다시 캐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여온 것입니다. 조사 결과, 후지무라 신이치는 약 20년 동안 무려 162곳의 구석기 유적을 날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일본은 발칵 뒤집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