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문을 발표한 민족대표33인은 왜 다 종교인들 인가요?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민족대표 33인의 구성이 천주교 16명. 기독교 15명. 불교 2명이라는데 왜 종교인들로 구성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3.1운동 준비 당시에는 고관대작을 지낸 유명인사를 민족대표로 섭외하려고 했지만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민족대표 자리를 수락한 이가 없었고 결국 종교인들이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직접 나섰다고합니다
즉, 정치·사회적으로 일제의 강압통치가 심해지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모여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분야는 종교계가 거의 유일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손병희를 위시한 천도교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한규설,
윤구, 박영효, 윤치호, 이완용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자
개신교, 불교, 가톨릭, 유교 등의
종교계 인물들과 접촉하여 민족대표를 꾸리게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을 준비한 사람은 주로 종교계 인물로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에서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반인이 독립 선언 이런거 하면 간섭이 더 많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나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종교 단체 회원들이 서로 몰래 도와주고 지원도 해주고 사정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33인이 아 다 종교인이 이유는 이 독립 선언문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아기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결정 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그래서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개신교 인사 16명, 천도교인사 15명, 불교인사 2명 이 되었고 . 그들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 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 경찰서로 연행하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민족대표 33인 처음 결성 당시 손병희를 위시한 천도교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개신교, 불교, 가톨릭, 유교 등의 종교계 인물들과 접촉하여 민족대표모임을 구성하였으며, 이 때 가톨릭과 유교는 각 단체의 이해관계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불교계는 일본 불교의 침투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두 명만이 참가하게 됩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개신교 내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대한 반감이 올라있던 상황이라 천도교의 제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