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문화가 크게 진보한 것은 당나라 사람의 기록으로 인하여 알수있거니와, 이 보다도 만주 목단강성 영안현 동경성에 남아 있는 발해의 유물 유적으로 더욱 잘 알수 있는 것입니다. 동경성은 오랫 동안 발해 서울로 되어 있던 상경 용천부의 소재지로서 둘레 40리의 큰 성이 있고 그안에 궁전·비원·연못·사원과 시가의 유지가 남아있는데, 시가의 설계는 대개 당나라 서울 장안을 모방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유물로는 화려장대한 석등과 연꽃 망초 문의를 곱게 새긴 벽돌과 개와 등이 있는데, 석등은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요 벽돌과 개와는 고구려의 형식을 계승한 것입니다.
발굴된 출토유물과 온돌구조가 전형적인 발해 것임은 물론 고구려의 전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적갈색의 띠고리 손잡이 달린 호((帶狀把手壺), 내만구연호(內彎口緣壺) 등은 형태뿐 아니라 제작기법에서도 고구려의 전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ㄱ’자로 꺾어 건물 밖으로 빼는 온돌구조 역시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집안 동대자(東臺子)에서 출토된 온돌구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해무리굽 청자(중국 浙江省 越州窯, 9세기)는 당시의 폭넓은 국제 교류를, 인물문양토기편은 생활문화를, 금 도가니는 수준 높은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물들로 평가된다. 특히 토기에 새겨진 인물문양은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으로 마치 강강술래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