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으며, 이현운 역시 전쟁에서 패한 후 거란에 포로로 잡혀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절개를 굽히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거란의 신하가 되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1009년 강조와 함께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키고 스님으로 있던 현종을 옹립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강조의 정변입니다. 1010년 여요전쟁 때 강조의 부관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패하여 강조와 함께 포로가 되었는데 항복을 거부한 강조와 다르게 성종 아율융서에게 충성하여 거란에 항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강조가 분기탱천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발로 찬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강조는 처형당했고 강조가 주살 당한 뒤 이현운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