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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6.07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대해 알고싶어요

고구려보다 크고 땅도 넓었다는데 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어떤사람이었는지 어떠한 업적이 있었는지 발해의 역사도 같이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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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조영 > 발해의 시조로 시호는 고왕 입니다.

    고구려의 유민으로 698년 진을 세워 왕이 되고, 713년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여 국호를 발해로 고쳤습니다.

    발해 > 698년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 말갈족을 거느리고 동모산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 입니다.

    수도는 건국 초기를 제외하고 상경 용천부에 두고 해동성국 이라 불릴만큼 국세를 떨쳤으나 926년 요나라에 망하였습니다.

    해동성국 >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세운 나라로 발해국의 전성기 였던 제10대 선왕 때의 발해국을 일컫던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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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당의 지배를 피해 발해를 건국. 당시 말갈족 유민과 고구려 유민이 손을 잡고 고구려 영토로 이동해 나라를 세웠습니다.

    대조영은 정치경제 학문 국방강화 를 기틀로 전통적인 분권적 권력구조를 개혁하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시하며, 조선시대의 경제, 국방,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업적은 후대에도 계승되어 조선의 발전을 이루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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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7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98년에 고구려 옛 장수인 대조영(大祚榮, ?∼719)이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초기 국호는 진국(振國 또는 震國)입니다. 대조영은 당나라에 의해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城〕 차오양〔朝陽〕에 해당하는 요서(遼西) 지방의 영주(營州)에 강제로 옮겨가 살았습니다. 대조영과 그 가족이 언제 영주로 끌려갔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주로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고구려 유력층을 당나라 내지로 끌고 갈 때 영주에 남겨졌다는 설과 679~681년에 요동에서 보장왕이 말갈과 반당(反唐) 모의를 한 것이 드러나 보장왕과 고구려 유민이 다시 당나라로 끌려갈 때 남겨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영주는 당나라가 동북쪽 이민족을 통제하던 거점 도시로, 주변 지역에서 귀순해 오거나 강제로 끌려온 이민족들이 많이 거주하였습니다. 그러한 이민족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거란족〔契丹族〕, 해족(奚族), 말갈족(靺鞨族) 등이 있었습니다.


    당나라는 변경 이민족 지역에 기미주(羈靡州)를 두고 지배하였는데, 요서와 요동지역에서는 나당전쟁 이후 기미 지배 체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682년에 동돌궐 제국이 재건에 성공하자 동북지역 여러 민족의 반당 활동을 자극하였습니다. 693년경에는 흑수말갈과 실위의 반란이 있었고, 696년에는 요서에서 거란족을 중심으로 해족, 고구려 유민, 말갈족 등 여러 민족이 연대한 대규모의 반당 전쟁이 일어나 요동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696년 5월에 거란족 수장인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이 영주(營州) 도독의 가혹한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유주(幽州: 지금의 베이징)와 허베이〔河北〕 지역을 공격하여 당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반란에는 영주에 거주하던 대조영 집단도 참여하였습니다. 대조영의 아버지인 사리(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은 영주를 떠나 요동지역에서 반당 전쟁에 참여하였는데, 말갈의 걸사비우(乞四比羽) 집단도 함께하였습니다.


    허베이 지역으로 남하하였던 거란족 중심의 반당 세력은 이듬해에 겨우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동지역의 반당 세력은 친당 세력을 압도하며,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있던 신성(新城), 그리고 요동성(遼東城), 마미성(磨米城) 등의 전투에서 상당한 세를 떨쳤습니다. 따라서 당나라는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 허국공(許國公)을 주어 이들을 회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걸사비우가 이를 거절하자 당나라에 투항하였던 거란 장수 이해고(李楷固)가 측천무후의 명령을 받아 걸사비우를 공격해서 죽이고, 이어 대조영 집단을 뒤쫓았습니다. 이 무렵 걸걸중상도 사망하여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병을 이끌고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추격해 온 당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이해고는 겨우 몸만 피하여 돌아갔고, 곧바로 요서지역의 거란이 돌궐에 투항하며 길이 막히게 되자, 당은 더 이상 대조영 집단을 토벌할 수 없었습니다.


    천문령 전투를 마지막으로 대조영은 걸사비우의 무리를 이끌고 고구려 멸망기부터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요동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동모산(東牟山)에서 건국하였습니다. 동모산은 지금의 지린성〔吉林城〕 둔화〔敦化〕에 있는 청산쯔산성〔城山子山城〕으로 여겨집니다. 건국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으나 일본 『유취국사(類聚國史)』에 기록된 698년이 정설입니다.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입니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입니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습니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습니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습니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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