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뭔가요?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이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과제는 식민지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다. 해방 후 일제가 남긴 식민지잔재에는 제도ㆍ법률ㆍ언어ㆍ문화 각 방면에 걸쳐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 가장 시급히 청산해야 할 잔재는 앞에서 열거한 친일행위를 범한 사람들이었다. 인간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제도나 문화를 개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된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국회 안에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를 비롯하여 특별검찰부와 특별 재판부를 설치하였다. 제헌국회에는 그래도 독립 운동에 참여한 민족주의자들이 다수 선출되었기 때문에 이런 법률을 제정할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반민법을 집행하는 기구가 모두 백성의 대의기관인 국회안에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행정부와 사법부에는 일제하의 관료 법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법의 시행을 그들에게 맡길 수 없었다.
그러나 반민법은 생각만큼 잘 시행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결정적인 것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이 법의 시행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환국 후에 친일파들이 제공하는 정치자금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 그 때문에 친일파들의 요구를 일정하게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반민법’대로 친일파를 처벌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여러 가지로 변명했다. 새나라 건설에는 화합이 필요하니 과거에 범죄한 자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새나라 건설에는 경험있는 관료와 경찰, 군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친일파들을 등용 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집권한 후 친일파를 청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둘째, 미군정기부터 친일파들이 등용되어 정부 수립 때에는 정부내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 처음에는 처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은인자중하던 친일파들은, 한국에 진주한 후 일제 강점기의 관료들을 중심으로 군정을 펴려고 한 미군정에 의해 재등용되었고 정부 수립후에도 그들의 관직이 계속되자 그들은 과거의 민족을 배반한 죄에 대하여 사면 받은 듯이 생각하고 큰소리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해방 후의 조국의 분단상황이 법시행을 약화시켰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반민법이 제정된 후 이를 시행할 즈음, 변신에 능하고 대세의 움직임에 민감한 친일파들은 당시 조국의 분단상황을 잘 이용하여 자신들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즉 자신들을 반공주의자로 변신시켜, 반공의 투사로 나서는 한편 민족주의자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따라서 친일파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잡아가려 할 때에는, 그 내막을 모르는 백성들은 '반공투사’를 잡아간다고 비난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파들은 교묘하게 이승만을 농간하여 그 법 자체의 기능을 제한하게 되었다. 원래 2년 한시법으로 된 ‘반민법’은 제정된 지 1년이 채 못되는 1949년 8월 31일 후에는 효력이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