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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7.26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 사치가 심했나요?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등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여럿 있었는데 항생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던 아이콘으로 묘사되더라구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는 이긴 자의 시각에서 세워진다는 논리의 희생양인가요, 아니면 정말 사치가 심했던 사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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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황제 레오폴트 2세와 그의 아내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70년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왕비가 되었지만,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프랑스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루이 16세와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1793년 혁명 재판에서 반역죄로 기소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던 인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값비싼 옷과 보석을 구입했고,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프랑스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로 사치스러운 인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왕비로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는 이긴 자의 시각에서 세워진다는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처형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미지는 혁명의 적대자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사치스러운 인물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했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역사가 밝혀내야 할 인물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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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리앙뚜아네뜨는 황실 예산의 10분의 1도 쓰지 않을 뿐더러 파티를 즐기지 않고 소박하며 사색을 즐기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였다고합니다. 이런 소문은 그녀의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미워하는 나라의 대표였던 그녀는 여러 관료들이 그녀를 계획적으로 나쁜 여왕으로 만들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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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비가 되고 사치, 도박 , 유흥으로 밤새도록 연극을 보거나 무도회를 즐기는 방탕한 생활을 했고 도박을 좋아하긴 했지만 잘 하지는 못해 빚을 많이 지기도했으나, 이는 당대 귀족 문화에서 필수에 가까운 코스였습니다.

    당대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적당한 사치와 유흥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 선택이었습니다.

    루이 16세 즉위 후 기록되어있는 왕실 비공식 재정 지출 목록에 따르면 1789년 까지의 왕실 소비 금액은 대략 2억 2천만 리브르였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예산 중 자신이 쓸 수 있는 금액 한도의 10%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는 약 100만 리브르에 가까운 금액인데, 100만 리브르 라고 해도 당시 금 가격을 바탕으로 환산하면 대략 1천 2백억에 달하는 거금이기 때문에 아무리 상대적으로 사치를 덜 했다고 해도 반대층 입장에서는 사치를 하긴 했다 라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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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튼는 실제 도박을 했고, 밤새 연극을 보거나 무도회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귀족 사교계의 문화 중 하나로, 사교계에서 이러한 문화를 즐기지 않으면, '교양이 없는 무식한 인간'으로 폄하되거나, '파티에 참석조차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라는 오명이 붙어 무시당하기 일수였죠.

    물론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도박을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그녀는 도박을 좋아해서 빚을 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비난을 받을 때에도 그녀가 썼던 돈의 양을 보면 다른 왕족뿐 아니라 귀족과 비교해도 적은 편이었죠. 프랑스 왕족에서 소박한 이미지인 루이 16세보다 지출이 적었다고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에 대한 일화로 그녀의 정원개축을 꼽는 이들도 있는데요. 당시 그녀가 정원을 개축하는데 쓴 돈은 약 20만 리브르정도로, 같은 시기 왕의 동생인 프로방스 백작이 궁전을 개축하는 데 쓴 돈의 1/5가량에 불과하죠. 또한 그녀는 정원개축 당시 루이 15세의 애인이었던 뒤바리 부인이 썼던 가구를 가져다가 썼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치는 역대 왕비들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수수했죠. 물론 역대 프랑스 왕비들과 비교했을 경우이며, 당시 프랑스의 재정상태가 최악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사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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