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혼인 제도는 고려시대와 달리일부일처제이지만 첩을 들일수 있는 축첩(蓄妾)이 용인되어,
양반 사족은 본처가 살아 있는 동안에 첩을 들이는 일이 많았는데, 비용은 어느정도 부담하였나요?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첩은 정실부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분이 낮은 사람이 대상이었습니다.
18세기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첩을 15냥에 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