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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2.26

조선시대에 상민도 첩을 두는 경우가 있었나요?

조선시대를 보면 양반의 경우에 첩을 두는 경우가 굉장히 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서 상민 중에서도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은 여유가 됐을텐데 첩을 두곤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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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를 많이 축적하기가 상민 중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농은 조선 후기에나 등장합니다. 모내기 등이 보급되고 상품작물이 재배되면서 광작경영에 성공한 이들은 부농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명첩이나 납속 등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으며 족보를 위조해 양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양반이 되어 축첩을 하기도 했겠지요. 조선 후기에는 양반수가 급격히 늘어나 조세부담이 농민층에 과중해져 농민층이 몰락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느 지방의 데이타를 보면 양반이 60~70프로 상민이 20% 정도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양반은 면역의 특권이 있었으므로 군포 납부층이 줄어들게 되어 정부재정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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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첩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상민 중에서도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첩을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양반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첩을 두곤 했습니다. 양반들은 대개 고상한 가문의 여성들을 첩으로 삼았지만, 상민들은 대개 자신의 첩으로 일하던 여성들을 아내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첩을 두는 문화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낮았던 조선시대에는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조금씩 개선되면서, 첩을 두는 문화 역시 변화해갔습니다. 이후로는 첩을 두는 것이 타당한 이유가 없어지면서, 첩을 두는 것이 오히려 비난받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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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상민도 첩을 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상민은 관료나 양반들의 가사를 보조하는 일을 하며, 일종의 하인으로서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상민들 중 일부는 첩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조선왕조는 첩 제도를 운영해 군사, 외교, 내정 등에서 정보 수집에 활용했습니다. 상민도 첩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는 일부 상민들의 행동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모든 상민이 첩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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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니요 흠 저도 최근에 이런 저런 영상을 보면서 배웠는데 첩 한명이 집한채랑 비용이 똑같아서 첩을 두기는 힘들었을꺼예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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