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일부일부처제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양반들이 축첩을 했던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조선시대에 첩이 있는데도, 일부일처제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역시 당시 양반들의 꼼수라고 할수 있는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제도 정비 과정을 거치면서 왕실에서도 첩제를 허용하는 일부일처 혼인형태로 규정하는 기본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선 태종 13년에 유처취처 즉 중혼을 금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일부일처제가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