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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매미272
젊은매미27223.05.13

세종대왕릉비는 한양인 서울에 있지 않고 여주에 위치하고 있나요?

조선시대 왕 중 세종대왕릉비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인 현 서울에 있지않고 거리가 먼 여주에 있는건가요?

여주로 지정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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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지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 묘가 있던 자리에서 매우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자 예종 때 현재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 자리가 천하의 대명당으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대단한 자리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능의구성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의역사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출처: 세종대왕유적관리소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 지리설 때문 입니다. 세종 대왕릉이 여주에 있는 이유는 천하의 명당이기 때문 이라고 하는데요. 대모산 근처 태종의 헌릉옆에 있었으나 왕실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나 묘가 안 좋다는 이유로 여주에 능을 썼다고 합니다. 광주 이씨 이인손의 묘역이었으나 이인손의 아들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쓴 것 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