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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힘찬하늘소17723.07.30

2014년에 일어난 예멘 내전은 왜 발발한 것인가요?

2014년에 예멘 내전이 일어나 해당 지역의 치안이 매우 불안정해졌으며 예멘 반군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에 침입한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 내전은 현재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예멘 내전은 왜 발생하였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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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티 반군은 1990년 통일 이후부터 예맨 북부의 사다 지역을 거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무장 조직으로 북부지역에 밀집한 시아파 세력을 대변합니다.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군의 공방은 2004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는데 반군 지도자 후티의 친형이 정부군에 사살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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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30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티 반군은 1990년 통일 이후부터 예멘 북부의 사다(Sa'dah) 지역을 거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무장 조직으로서 북부지역에 밀집한 시아파 세력을 대변하였다.4)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군의 공방은 2004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반군 지도자 후티(al-Houthi)의 친형이 정부군에 사살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양측은 2008년 8월에 전투 종결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교전이 계속되다가 2009년 8월에 정부군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양측의 충돌이 격화되기도 하였다.


    2010년 2월에 양측이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반정부 시위에 따른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내전이 재발한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자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예멘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5)


    이에 33년간 장기 집권해 온 살레 대통령은 2012년 2월 사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하디(Hadi) 부통령이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으며, 2012년에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이어서 2013년 3월에는 예멘 대부분의 정파와 부족을 망라한 565명의 국민대표가 참여하는 '예멘 범국민 대화(NDC)'가 출범하면서 연방제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연방 구성안을 두고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갈등이 고조되었으며, 마침내 후티 반군이 하디 정부군에 공세를 가하면서 2차 예멘 내전이 시작되었다.

    반군이 2014년 9월에 수도 사나(Sana'a)를 점령하면서 수세에 몰리자 하디 정부는 남부의 아덴(Aden)항 지역으로 후퇴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2015년 3월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한 후 6개월 뒤인 9월에 아덴으로 돌아왔다.


    2차 예멘 내전은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대립은 양측의 뿌리 깊은 정치적 대립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란과 아랍 연합군이 개입하면서 국제화된 내전의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 배경에는 이란이 후티 반군에 군사훈련과 미사일 공격 능력을 지원해 왔다는 의혹이 있었으며,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하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개입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은 2015년 3월에 후티 반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 작전을 개시하면서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6)

    그러나 아랍 연합군은 초반부터 대규모 공습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게릴라전 전투의 경험으로 다져진 후티 반군을 제압하지는 못하였다.


    2015년 7월부터는 지상군을 본격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지만, 산악지대에 포진한 후티 반군을 압도하지 못했다.


    이에 아랍 연합군은 후티 반군이 이란으로부터 무기와 물자를 지원받고 있는 보급로로 지목된 사나 공항과 호데이다(Hodeidah) 항구 등을 봉쇄하였다.


    이에 대응해 후티 반군은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본토를 타격하는 공격을 감행하면서 전장은 역내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예멘 내전이 국제화된 내전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의 휴전 협정을 촉구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국제연합의 중재로 2018년 12월에 스웨덴에서 개최된 평화회담을 통해 양측은 스톡홀름 협정(Stockholm Agreement)으로 명명된 휴전 협정에 서명하게 되었다.


    동 협정은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호데이다시에서 양측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고 외부 원조와 포로 교환 등에 합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휴전 협정 서명 이후 호데이다 시내에서 양측의 전투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예멘 내전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국제사회는 재차 내전 중단을 촉구하였다.

    마틴 그리피스(Martin Griffiths) 당시 유엔 예멘 특사는 2020년 1월 28일에 진행된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충돌이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또한,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고려할 때 전 국가적 차원에서 즉각적인 휴전이 필요하다고 촉구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은 이러한 유엔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4월 9일부로 2주간의 휴전을 선언하였다. 이어 4월 24일에는 휴전을 한 달 연장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후티 반군이 연합군의 휴전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이에 더해 예멘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남부과도위원회가 2019년 8월에 예멘 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Aden)을 점령하면서 예멘 정부군과 충돌하면서 내전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졌다.


    예멘 정부를 후원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남부과도위원회를 후원해 온 UAE 간 갈등도 고조되었다.


    예멘 정부와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2019년 10월에 권력 분점에 합의했으며, 11월에는 양측의 교전을 중단한다는 '리야드 합의(Riyadh Agreement)'에 서명하였다.

    하지만 2020년 4월에 남부과도위원회는 남부 지역에 대한 자치지역 수립을 선포하였으며, 이어서 8월 26일부로 예멘 정부와의 권력 분점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양측의 갈등은 2020년 12월 남부과도위원회가 예멘 정부에 참여하면서 공식적 차원에서는 종결되었다. 하지만 남부 분리주의 세력에 의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한 상황이다.8)


    예멘 내전의 전개 과정에서 다수의 양측 전투원이 사망하였다. 내전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를 포함하면 사망자 수는 직접적인 교전의 피해를 훨씬 상회한다.


    대규모의 난민 발생과 함께 극심한 식량 부족의 문제도 초래되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과 결부되어 더욱 고조되고 있다.9)

    출처 :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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