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즉위할 당시 우왕은 10세였기 때문에 공원 왕후 홍씨가 섭정을 맡았지만 공원왕후는 공민왕의 유지라는 강력한 명분을 가진 이인임을 물리치지 않고는 무엇도 할 수 없었고, 공원왕후가 1380년에 사망한 후로는 우왕이 1386년에 이인임이 사직하기 전까지 거의 이인임에게 정권을 맡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우왕은 거의 10년 가까이 사실상 이인임의 섭정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명의 신하가 10년 이상 섭정 행위로 국무를 관장하고, 심지어 왕의 양부로 대접되었다는 것은 한국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이인임은 공민왕의 신임을 얻고, 홍건적과 덕흥군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여러 전란에서 공을 세워 권력을 키웠습니다
공민왕이 시해되자 공민왕을 죽인 홍륜, 최만생과 그 일파를 모두 처형하고 왕족으로 대통을 잇게 하려는 명덕태후(공원왕후)의 뜻에 반하여 공민왕의 유일한 아들인 모니노를 우왕으로 추대하여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는 10년간 우왕을 섭정하고, 친원 정책을 통해, 권문세족의 수장으로 군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