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러 이유로 전쟁 초기부터 불만을 품은 일본군 병사들이 조선에 귀순하거나 투항하는 일이 많이 발생, 이때문에 일본군 무사들이 탈영을 막기 위해 본진에 목책을 설치하기도 했고 당시 투항한 항왜들 중 일반 병사와 무사, 김충선이나 여여문 등의 장교급들도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히거나 귀순한 일본군을 처형했으나 이들이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이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후로 항왜들의 수가 증가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 수가 1만이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각지에서 포로로 잡힌 일본군과 일본군 투항자가 급증해 조서 조정이 이를 효율적으로 분산 배치하려 머리를 싸맬정도였고 임진왜란이 끝난지 30년 가까이 지난 이괄의 난 때도 100명이 넘는 항왜를 동원한 것으로 보아 최소 수천명의 항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은 일본군의 전술과 조직에 해박하고 총포술, 전쟁 경험이 풍부해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큰 힘이 되었고 오랜 평화로 군사력이 약화되어 당시 전투 기술이 열악했던 조선군에 총포술과 검술 등을 퍼뜨리는데 큰 공을 세워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