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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2.16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의 근거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 묘청이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자는 주장으로 난을 일으킨것으로 아는데요 왜 이런 근거로 얘기를한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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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경(평양)은 최고의 명당자리입니다. 이곳에 궁궐을 세우고 도읍을 옮기 시면 세상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묘청의 말에 고려 인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묘청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고려의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했을까요?

    인종은 묘청의 말대로 서경에 대화궁을 짓고, 도읍을 옮길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묘청은 왕을 황제라 부르고,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경은 정말 기운이 좋은 곳이었을까요? 서경의 중흥사탑이 불타는가 하면, 1132년에는 인종이 서경으로 가던 중에는 비바람이 치고 온 세상 이 깜깜해지기도 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갑자기 추워져 사람들이 얼어 죽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묘청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것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입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에 정치는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경주 김씨와 같은 문벌 귀족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방 출신의 신진 관료들을 중심으로 특정 가문의 권력 독점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서경 출신의 승려 묘청과 정지상·백수한 같은 신진 관료들은 인종에게 ‘고려를 황제국이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금을 정벌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하여 서경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인종은 이들의 의견에 따라 서경에 대화궁이라는 궁궐까지 지으며 수도를 옮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개경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기존의 귀족 세력들이 끈질기게 서경 천도를 반대해서, 인종은 결국 서경으로의 천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하여 서경(오늘 날의 북한 평양직할시, 평성시 인근)이 소위 '명당'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며, 과거 고려 초 서경을 제2의 도읍으로 여길만한 중시했던 곳이기 때문에 묘청 등의 서경 세력은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개경(개성)은 이미 지덕이 쇠하여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며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 하였던 것입니다.